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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안심마을
2018-11-22

2058년 대한민국. 노인은 전체인구의 40%를 넘었다.
104세 A씨는 치매환자다. 70세 아들이 돌보고 있지만 아들 또한 중풍 초기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A씨를 오래 모신 탓에 우울증도 왔다. A씨뿐만이 아니다. 늙은 자녀들과 며느리, 사위들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장수가 결코 축복만이 아닌 시대다. 지역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된다.
#2030년 (가칭)용산치매안심마을. 120여명의 치매환자들이 함께 산다.
종종 옆방 친구들과 제과점이나 카페에 앉아 수다도 떨고, 미용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4개 건물이 각기 다른 지붕 모양이라 방을 찾기도 쉽다.
마을 한 켠 텃밭에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어서 서로서로 나눠먹기도 한다.
이 마을은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보호 아래 치매환자들이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치료를 병행하는 마을이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노인인구는 이미 전체 14%인 708만명을 넘어섰고,
치매환자는 78만명에 이른다. 2030년이 되면 치매환자는 127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치매환자가 있으면 형제간에 등을 지고,
때로는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치매환자들이 다시 웃는 법을 기억해 낸다.”
일본 구마모토현 치매정책을 소개한 시사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이 머릿속을 맴돈다.
화면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어르신의 해맑은 미소가 담겼다.
개인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
용산구의 치매정책이 추구하는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존 요양병원시설들이 통제와 격리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치매안심마을 건립을 추진해왔다.
치매환자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햇빛을 보고, 바람도 쐬고, 땅도 밟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는가.
‘네덜란드에 호그벡 마을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용산치매안심마을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용산에서 시작한 치매안심마을이 성공적인 한국형 사업모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는 물론 구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을 기대해본다.

2018년 11월 22일 '매일경제'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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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상징 공원
2018-11-22

가을볕 잔득 머금은 잔디밭, 붉게 물든 단풍,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천천히 바람이 스쳐간다.
110여년 세월 금단의 땅으로 머문 까닭일까. 담장 안 미군기지는 시간의 속도마저도 다른 듯하다.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일행들과 함께 미군부대를 거닐며 든 생각이다.
연말까지 6회에 걸쳐 미군부대 버스투어가 진행된다.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조성되는 이 땅의 가치를 국민들이 직접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시민사회수석에게 제안해 이뤄졌다.
우리 용산구가 2016년부터 구민들과 함께 해왔던 미군부대 투어의 확장판이다.
이날 해설을 맡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미군부대 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기억하는 공간들을 두루 소개했다.
위수감옥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1909년 문제를 일으킨 일본군을 가두기 위해 위수감옥을 만들었다.
둔지산 기슭에 터 잡고 살던 우리 선조들을 내쫓고 말이다. 해방 후 이태원형무소라고 불리며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장군의 아들 김두한, 시인 김수영 등을 수감했다.
최근까지 미군 의무부대 사무실로 사용되면서 담장과 일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벽돌담장에 새겨진 탄흔들은 한국전쟁의 아픔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위수감옥, 일본군 작전센터였던 사우스포스트(SP) 벙커, 용산총독관저 터에 자리한 121 병원….
한미친선협의회 한국측 위원장 자격으로 종종 미군부대를 방문한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부대를 돌아보고 있자니 사뭇 각오가 다르다.
이 땅이 드디어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관할 자치구로서 기대가 크다. 그리고 온전한 공원조성을 위해 수없이 외쳤던
우리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진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미군부대 버스투어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공원조성 과정에서 추진주체가 단일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총리실 산하로 확대되고,
한미연합사령부도 연내 국방부로 이전하기로 결정됐다.
이제는 용산공원에 남북평화의 시대적 소명을 담길 원한다.
단순한 생태공원을 넘어 분단국가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국가통일공원이길 희망한다.
지난 역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공존할 때 용산공원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날 것이라 믿는다.

2018년 11월 14일 '매일경제'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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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선언
2018-11-22

“지역이 더 잘 할 수 있는 국가사무를 자치사무로 전환하며, 이와 관련된 인력과 재원이 함께 지방이양 되도록 협력한다. …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
자치분권 경주선언 일부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이 모여 선언문을 작성하고,
지난달 30일 경주 지방자치박람회 현장에서 낭독했다.
지방 4대 협의체 회장들과 함께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지방자치 부활 27년, 새로울 것 없는 문장들 앞에서 ‘2할 지방자치’의 현실이 무섭게 다가왔다.
안타까워할 틈도 없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이 더해졌다.
물론 ‘대통령 의지가 강한 지금이야 말로 지방분권을 실현할 최적기’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생겼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를 설치하고, 9월에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그 방향이 광역지방정부 중심에 있다는 것. 전국 226개 시·군·구는 지리적 여건도 다르고, 인구구성도 다르다.
단순한 유권자가 아닌 ‘주권자’로서 지역 일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하는 주민 욕구(Needs) 또한 각기각색이다.
중앙정부와 광역정부의 한계이자 기초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주민과의 소통은 동네에서부터 비롯된다. 지역 일은 지역에서 가장 잘 안다는 이야기다.
같은 이유로 지방분권은 행정 효율성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민선시대, 지방정부 수장들은 주민 욕구를 얼마나 많이 충족시켜주는가에 따라 능력을 평가 받는다.
지역 최초 4선 구청장으로서 뼈저리게 경험한 바다.
지방정부 수장들이 주민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행정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6개 지방정부는 굵직한 지역현안을 해결하기에는
예산과 권한의 제약이 많다는 공통된 고민을 안고 있다.
인구 25만의 서울 용산구 또한 재정자립도가 높은 편임에도 제도적 테두리에 갇혀 정책추진에 어려움이 많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책임감을 실어 ‘연방제수준의 지방분권국가 건설, 주민주권과 지방의 충분한 자치권 보장’을 염원하는
경주선언이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2018년 11월 6일 '매일경제' 기고

49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시대
2018-08-30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시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창 힘이 넘치는 때에 있는 사람. 사전에 명시된 ‘청년(靑年)’의 의미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 의해 청년의 나이를 15세 이상에서 29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으니 그럴 듯한 설명이다. 물론 공공기관 등에서는 청년을 고용할 때 기준을 34세 이하로 완화한다. 용산구는 6월 말 기준 전체 인구의 23%(5만3천여명)가 청년이다.

흙수저론, N포 세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현실에서 청년의 삶은 고달프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고용동향에서 청년실업률은 매달 최고치를 갱신한다. 장기취업난 속에서 학자금과 생활비 등으로 인한 부채까지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렸다. 이들에게 사회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경제 활력을 이끌어 갈 청년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일자리가 없으니 결혼을
포기하게 되고, 결혼을 못하니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세금이 줄어들고, 소비도 줄어 경제 저성장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민선7기 구정운영 무게중심은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에 있다. 청년정책이 당사자들과 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 기획과정에서부터 청년들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청년자문단이 도입된 이유다. 200인 규모 정책자문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8월말까지 자문단을 모집 중이다. 자문단은 일자리에서부터 청년주택, 네트워크 활성화 등을 주제로 분기별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층의 건강도 챙긴다. 아프면 청춘이 아니다. 말 그대로 ‘환자’일 뿐. 학업과 취업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인한 건강악화가 예상되지만, 대체적으로 청년세대는 국가건강검진에서 배제돼 있다. 그래서 용산구는 민방위대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건강검진을 학생, 취업준비생에 이르기까지 청년 전체로 확대한다.

나이불문하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인 만큼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창업지원센터 운영, 면세점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 청년 맞춤형 공공근로사업, 찾아가는 취업 코디네이터 사업 등 취ㆍ창업 지원정책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민선7기에서는 일자리주식회사를 설립해 실질적인 체감온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용산구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동산으로, 높은 진입장벽에 막혀 청년층 유입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다행이 2020년 삼각지역 인근에 역세권 1호 청년주택이 조성되고, 롯데기공에서 남영역 인근에 2호 청년주택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청년층이 늘어나 이 일대가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개발․재건축 시 기부채납한 부지에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청년대책,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발 맞춰 나가되 그 역할을 달라야 한다. 많은 예산이 들거나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경우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주민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지방정부는 지역사정에 맞는 정책을 발굴, 추진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2018년 8월 6일 '서울신문' 기고

48
용산기지 내 둔지미 마을을 기억하자
2018-01-02

1822년, 병오년 생(37세) 훈련도감 소속 군인 천흥철은 둔지방 지어둔계 제30통 제1호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 기본적으로 다섯 집을 1통으로 두는 오가작통법을 실시한 것을 고려해보면
그 당시 지어둔계는 최소 150가구 이상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한 장의 준호구(조선시대 호적).
천흥철의 준호구로부터 둔지산 자락에 살았던 선조들의 흔적들을 되짚어 본다.
지어둔계는 둔지미 마을의 전신으로 지금 용산미군기지 일대다.
엄밀히 말하면 용산기지는 용산(龍山)이 아닌 둔지산(屯之山) 기지인 셈이다.
둔지산을 중심으로 이태원 마을과 얼음을 보관했던 서빙고, 기와를 굽던 와서까지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일제가 둔지산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 수용하면서 우리네 역사 속에서 강제로 지우기 전까지 말이다.
일제에 의해 우리는 조상 대대로 이용했던 옛 길들을 잃었고,
마을 주민의 젖줄이었던 만초천도 욱천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역대 왕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남단의 역사도 잊혔다.
100여년 긴 세월 금단의 역사를 깨고, 용산기지가 국가공원으로 되돌아온다.
지난 7월 주한미군이 64년 만에 용산시대를 마감한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가속도가 붙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기지의 온전한 반환’이라는 큰 그림 아래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공원을 조성해 나가자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됐다.
용산공원에 대한 용산구의 기대 또한 크다. 중앙정부가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용산구가 디테일하게 채워나갈 것이다. 이미 차근차근 준비를 해오고 있다.
역사에 관심을 두고 사료를 수집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
올해 달력을 한 장만 남겨둔 지금 또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를 발간한 것이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에 이은 두 번째 역사 기록물이다.
이번에는 일제의 용산 군기지 조성 및 확장과정은 물론 미시사적 분석을 통해
군사기지 이전 천흥철과 같은 선조들의 일상까지 기록했다.
둔지산과 만초천 등 용산기지의 생태환경도 자세히 설명해 이 땅이 지닌 역사적․장소적 가치를 한층 높였다.
책의 가장 큰 성과는 단연 ‘한국 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 발굴에 있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 연구실장이 찾아낸 명세도에는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마을규모가 상세히 표시돼 있다.
1906년 일제가 용산 군용지를 수용하면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기록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300만평에 이르는 용산군용지 면적이다.
지금의 공원조성 부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 당시 선조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군사기지로만 인식되던 지역역사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바라건대 기지의 온전한 반환도 좋지만, 일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둔지미 마을 주민들의 아픔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
공원을 조성함에 있어 선조들의 애환을 달래는 작은 추모공간이라도 마련되길 바란다.
최초로 조성되는 국가공원인 만큼 어떻게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가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토교통부는 물론 환경부, 국방부, 서울시, 용산구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용산국가공원 추진위원회’ 조성을 제안한다.

2017년 12월 8일, '한겨레' 기고

47
용산공원, 범정부적 기구 마련돼야
2018-01-02

공원(公園)은 살아있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긴 나무들,
큰 길에서부터 사람의 발길이 뜸한 오솔길까지….
어떤 때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어떤 때는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모습이 변하곤 한다.
변화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도시와의 유기적인 조화다.
공원 가치는 결국 주민들의 삶에 녹아드는 공간,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 속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대한민국의 센트럴파크를 꿈꾸는 용산공원. 지역 한가운데 있으면서
용산구 전체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했던 용산기지가 이전을 하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된다.
1906년 일제가 옛 둔지미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군용지로 수용한지 111년 만이다.
분명 공간적 주권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용산공원은 구민 삶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 만큼 어떻게 첫 발을 내딛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리를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공원을 조성해 나가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갑기만 하다.
용산구는 중앙정부가 놓친 공원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외국군 주둔지로서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이전 선조들의 삶까지 관심을 둔 것.
최근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를 포함한
일제 용산군용지 수용 관련 문건을 찾은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명세도 한편에 그려진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 등은 공원 조성과정에서 충분히 복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기초 지자체이기에 디테일에 강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용산공원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라면 공원과 구민 삶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역할은
우리 용산구의 몫이 되어야 한다.
용산구는 그동안 미국 대사관 예정부지, 드래곤힐 호텔 등 미군 잔류 시설의 이전을 요구해왔다.
백번 양보해서 국가안보상 어쩔 수 없이 존치되어야 하는 시설들은
국민적 동의와 이해를 구한 다음 한쪽 가장자리로 재배치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공원조성 이후 구민들이 실질적으로 느끼게 될 교통문제는 물론
부대 내 환경오염에 대한 조사와 복원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용산구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용산공원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지켜내는 것, 자치구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일 것인데 미8군 전몰자 기념비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용산구의 자리는 없었다.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대목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비롯한 공동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핵심정책협의T/F팀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그칠 게 아니라 특별법 개정을 통한 총리실 산하 범정부적 기구 조성을 제안한다.
그래서 국토부는 물론 환경부와 국방부, 서울시, 용산구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여
용산공원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017년 9월 20일, '서울신문' 기고

46
용산공원, 범정부적 기구 조성 제안한다
2018-01-02

대촌, 단내촌, 정자동, 신촌….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에
기록된 옛 둔지미 한인마을의 지명이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 연구실장이 찾아낸 이 지도에는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마을규모가 상세히 표시돼 있다.
1906년 일제가 용산 군용지를 수용하면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기록이다.
111년 전 용산은 원효로 일대 용산방(龍山坊)과 후암ㆍ이태원ㆍ서빙고동 일대 둔지방(屯芝坊) 등으로 구분됐다.
둔지미 마을은 조선 후기 둔지방의 일부였다.
명세도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을 살펴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촌(新村)의 경우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으나 1908년 모두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곳에 일본군사령관 관저가 들어섰으며, 이후 인근에 미8군 드래곤힐 호텔이 자리 잡았다.
명세도에 그려진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도 눈에 띈다.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이용했던 흔적들이 온새미로 배여 있는 길이며, 조선통신사 또한 이 길을 통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잊고 있었다.
용산기지 이전에, 일제군용지 이전에도 이 땅은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금단의 땅으로만 여겨졌던 용산기지가 111년 만에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네 아픔의 역사만 이야기 한 것이다.
‘아픔의 역사’도 역사인 만큼 잘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여기에 ‘저항의 역사’도 더해져야 한다.
용산구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료를 수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에서 시도하지 않은 근본적인 작업들을 우리 구가 차근차근 진행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명세도를 포함한 일제 용산군용지 수용 관련 문건을 찾은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9장의 명세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약 300만평에 이르는 용산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이다.
얼핏 봐도 공원조성 부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최종 군용지 면적은 118만평으로, 그 당시 선조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4.19와 5.18, 촛불 승리를 이끌어 낸 우리 민족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한매일신보 1905년 8월 11일자에는
‘그저께 하오 2시쯤 일본 헌병 몇 명이 이태원 등지 둔지미ㆍ촌리ㆍ와서ㆍ서빙고에 사는 동민 10명을 체포하여
명동 군사령부로 이송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용산에 군대를 주둔하기로 하고,
‘용산 일대 가옥과 무덤을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시위에 나섰던 것.
선조들의 저항정신이 남아 있는 이 땅이 111년 만에 우리에게 돌아온다.
미군 잔류 시설들을 오롯이 남긴 채 말이다. 외국군 주둔지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만큼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을 하면 그 자리에 용산공원이 조성된다.
358만㎡(약 108만평)의 전체 면적 중에서 전쟁기념관,
국방부 등 정부시설과 미국 대사관 예정부지, 드래곤힐 호텔 등 미군 잔류 부지를 제외하면 243만㎡ 규모다.
백번 양보해서 국가안보상 어쩔 수 없이 존치되어야 하는 시설의 경우 국민적 동의와 이해를 구한 다음
공원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 한쪽 가장자리로 재배치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20여년 전 아리랑 택시부지로 사용됐던 지금의 용산구청 부지를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은 경험이 있다.
미군 잔류 시설에 대한 논의만큼 부대 내 환경오염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복원계획 수립도 중요하다.
공원이 조성된 이후에 발생할 교통 문제 논의도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선조들의 역사를 최대한 살리는 작업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공원 조성과정에서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은 충분히 복원 가능하다.
그밖에도 용산공원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용산공원 특별법 개정을 통해서 국토교통부는 물론 환경부, 국방부, 서울시, 용산구 등 다양한 주체가
공원조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총리실 산하 ‘범정부적 기구’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2017년 9월 6일 '내일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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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을 생각하다
2018-01-02

오늘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비명에 가신지 68년째 되는 날이다.
선생은 안동 김씨 경순왕(敬順王)의 자손으로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말도 못 할 개구쟁이였다.
부친의 엽전을 훔쳐 떡을 사먹으려다 들보에 매인 채 매를 맞기도 했다.
열두 살(1887년) 때 부친이 사랑에 서당을 열었다.
선생은 글을 배우는 게 너무나 기뻤다고 <백범일지>를 통해 당시를 회상했다.
선생은 과거 낙방 이후 동학에 입도했다.
빈부귀천 차별 없는 동학의 교리를 접하고 “별세계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894년 동학혁명 때 교구책임자인 접주(接主)로 활약했으나 패하고 물러난다.
한동안 청계동 안태훈에게 의탁하는데, 안태훈의 아들 안중근을 보고 “영기(英氣)가 넘친다”고 평했다.
그곳에서 스승 고능선을 만나 한학을 배우고 국사를 논했다.
이후 선생은 청을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를 살해, 영어(囹圄)의 몸이 된다.
그는 옥중에서도 독서와 수감자 교육, 성악(聲樂)에 몰두했으니 참으로 대인배였다.
탈옥한 뒤 선생은 삼남지방을 돌아보고 1898년 공주 마곡사에서 스님이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환속했다.
교육사업과 구국운동, 일제에 의한 투옥과 고문을 경험한 뒤 1915년, 4년 만에 출옥한 백범의 나이는
이미 불혹(不惑·40세)이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1919년 선생은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고 해방에 이르기까지
항저우, 충칭 등을 거치며 저항을 이어갔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창단해 이봉창 동경의거와 윤봉길 홍구의거를 주도하기도 했다.
해방 후 선생은 정부자격으로 환국코자 했으나 미군정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다.
또 해방정국에서 조국의 분단을 온몸으로 막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선생은 1946년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용산구 효창공원에 모셨다.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봉안할 가묘(假墓)도 설치했다.
이듬해 원효로에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 후학과 정치세력을 규합했다.
1948년에는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효창공원에 모셨다.
그 또한 우익테러로 살해돼 1949년 효창공원에 묻히고 만다.
우리구는 오는 7월 4일 효창원에서 의열사 제전을 연다.
의열사는 효창공원에 묻힌 7위 선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정성껏 제수를 준비해 선열에 대한 합설(合設) 제례를 올리는데, 나 또한 제관으로 참여한다.
과거 임정 수립일(4월 13일)이나 임정 환국일(11월 23일)에 맞춰 제례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올해부터는 백범 선생의 안장일(7월 5일)에 즈음해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나는 지난 1998년 용산구 추진위원장으로 백범 김구 기념관 건립을 시작한 이래
항상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를 효창공원 빈묘에 제대로 모시고, 이봉창 의사 기념관도 하루속히 건립하겠다.
오로지 겨레를 생각한 그분의 뜻을 온 국민이 함께 이어가길 바란다.

2017년 6월 26일 '세계일보' 기고

44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2018-01-02

이미 ‘핫플레이스’가 수두룩한 용산이지만 하나를 또 더해야겠다. 북한남동이다.
오래된 주택과 아기자기한 상가, 무엇보다 응봉근린공원의 푸른 숲길이 어울려 정겨움을 자아낸다.
헌데 지난 봄, 북한남동 응봉공원 앞에 “공원폐쇄 절대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껴 뭇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문제의 발단은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였다.
우리구는 동별 구립 어린이집을 2개소 이상 갖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땅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한남동은 무려 8곳의 후보지를 물색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지역의 대부분이 개발구역으로 묶인 점도 문제였다. 파격이 필요했다.
마침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1000개소 확충계획과 맞물려 공원 내에도 어린이집 설치가 가능해졌다.
구는 응봉근린공원 일부를 활용해 어린이집을 조성하기로 했다.
고맙게도, LG복지재단 어린이집 건립사업에 우리구가 선정돼 사업은 속도를 냈다.
응봉근린공원은 시유지였고, 구는 시·구간 토지교환을 통해
지난해 7월 북한남동 어린이집 건립 부지를 최종 확보했다.
이후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원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3층 규모의 자연 친화적 건축물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한 주민은 “공원 내에 건축물을 짓는 데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녹지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전부 공감할 순 없다.
어린이집 확충과 공공보육 정책은 ‘인구절벽’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비극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도시는 희망이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2016년 말 기준 북한남동에는 영유아 6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아이들의 부모는 집 주변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조성되길 간절히 바란다.
워낙 섬같은 동네라 어린이집을 찾아 이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는 것 또한 용산구의 역할이다.
구는 응봉공원을 절대 폐쇄하지 않는다.
단지 공원 전체면적 67만 4천㎡의 극히 일부를 미래 세대를 위해 할애할 뿐이다.
구는 앞으로도 응봉공원을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다.

2017년 6월 16일 '서울신문' 기고

43
열 사람의 한걸음, '쓰레기 없는 용산' 완성
2017-04-27


열 사람의 한걸음, ‘쓰레기 없는 용산’ 완성

어떤 물건이든 버려지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여러 겹 쌓인 라면 포장지, 음료수가 담겼던 캔, 한 번 읽고 난 신문지까지.
편리함을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제품을 소비하고, 버린다. 버려진 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재활용 기준에 따라 분리 배출된다. 분리수거를 위한 잠깐의 수고로 환경보호에 동참했다는 위안을 얻으며, 그렇게 내 손을 떠난 쓰레기의 일생에 관심을 접는다.

쓰레기는 일부 매립되고, 일부는 소각돼 자취를 감추고, 나머지는 또 재활용을 통해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쓰레기의 운명, 이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지난 4월14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인근에서 90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무너지면서 민가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발생 나흘째에 접어들면서 희생자가 30명으로 늘었다는 언론보도에 우리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서울시와 경기도권 전역의 쓰레기가 모이는 수도권 매립지. 인천시가 사용기한을 2016년으로 못 박으면서 우리도 쓰레기 대란이 예고됐었다. 다행이도 매립지 소유권 이전 등 인천시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면서 대란만은 막은 셈이다. 2014년 말 당시
서울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2017년까지는 직매립 생활쓰레기를 없애겠다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용산구는 지난 한해 3만4751톤의 쓰레기를 배출했으며, 쓰레기 처리비용이 약 260억원에 이른다
이에 구는 2014년(3만4425톤) 대비 올해 10%, 내년까지 총 20% 감량을 목표로 정하고, ‘쓰레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되면, 수거를 안해 갈 뿐만 아니라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또한 다량배출 사업장의 쓰레기 배출을 집중 관리하고, 재활용품 선별과 1회용품 사용 규제도 강화했다. 부서(동)별 종량제봉투 실명제를 비롯해 구청 전 직원들도 쓰레기 감량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서울시와도 손을 잡고, 봉제원단 조각이나 커피찌꺼기 재활용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동별 생활쓰레기 감량 특화사업도 눈에 띈다. 봉제공장이 많은 청파동의 경우 봉제협회와 숙명여대가 함께하는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봉제원단을 재활용하는가 하면, 민ㆍ관협력사업으로 청소함 설치 등 ‘흩어모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한남동은 월1회
통반장과 함께하는 생활쓰레기 감량 토론회를 개최하고,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용산2가동은 26개 부동산중개업소가 참여한
가운데 ‘외국인 생활쓰레기 배출 홍보물’을 배부하고 있다.

쓰레기 감량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숫자상의 것만은 아니다. 예산 절감도 있지만, 우리의 노력이 이 땅을 살아갈 후손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주는 소중한 기회라고 확신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깨끗한 물과 깨끗한 공기가 주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연의 혜택을 우리 후손들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결론은 만들어진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보다는 덜 만들어 내는 것이 쓰레기 감량의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용산구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쓰레기 감량에 동참하는 것을 기대해본다.

2017년 4월 27일 '시정신문' 기고

42
역사와 생태, 도시계획 새 키워드
2017-02-06


많은 이들에게 ‘용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개발’과 ‘부동산’일 것이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기사 제목들만 봐도 그렇다. 용산공원 개발탄력, 용산 개발의 꿈, 용산의 ‘용틀임’ 등.
구청장으로서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을 통해 확보한 세수로 구민들을 위한 여러 좋은 사업들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구민들은 용산역 주변을 다니면서 ‘상전벽해’라고 한다.
용산역 전면 2·3구역 주상복합건물과 국제빌딩 1구역 아모레퍼시픽 사옥, 옛 관광버스터미널 부지 용산관광호텔 등이
하나둘 제 모습을 갖추면서 용산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용산역 주변을 포함한 이른바 ‘용산 지구단위계획’ 구역은 백만평(349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구 전체 면적의 16%에 이른다. 17년 전, 내가 민선2기 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처음 개발 계획을 입안했다.
당시만 해도 이는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지자체가 부러워하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구민들은 여전히 아쉬움도 크다. 서울시의 ‘용산공원 주변부 관리계획’, ‘한강변관리 기본계획’ 등이
지역에 중층적으로 덧씌워지면서 그간 추진해온 개발 사업에 강력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수시로 바뀌는 도시정책 탓에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주민들의 원성이 자주 내 귀에 들리고 있다.

물론 도시정책이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구에서 진행 중인 용산 지구단위계획 재정비 용역은
‘역사’와 ‘생태’라는 미래적 가치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구역 내 새남터 순교성지, 철도병원과 같은
여러 유적지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추후 ‘서울의 심장’으로 자리할 용산공원과의 생태적 연계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화다. 보존할 것은 반드시 보존하되 필요한 개발은 제때에 진행돼야 한다.
개발 사업이 불필요하게 지연되면 빈집이 다수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정비도 땜질식으로 이뤄져
주민 삶의 질은 날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근대화 과정에서 시가지로 개발된 용산은 외국군 주둔과 철도시설로 인한 개발제약으로
기형적인 도시공간 구조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기반시설과 가용 토지 부족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이 만들어졌다.

용산구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제국주의 야욕에 의해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겼으며 해방 이후에는
자유민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도시 한가운데를 미군기지로 제공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재산권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어 왔다. 강남에서 남산이 조망되는 “경관상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도 개발 제약의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강남북 균형개발은 물론, 오랜 피해를 감수하고 고통을 참아온 지역주민과 용산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관계 기관의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바다.

2017년 2월 6일 '서울신문' 기고

41
제주휴양소, 미래세대 위한 투자
2016-12-07



용산구가 제주도에 구민들을 위한 휴양소를 개설한다. 제주휴양소는 단순히 건물 하나를 얻는 것이 아니라 구민 복지와 자산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으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복지’

물론 “지금 당장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굳이 제주도에 휴양소를 매입하나?”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 또한 용산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그런데 용산은 현 세대들만 살아가는 땅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이 현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아시다시피 우리 용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개발이 이뤄지는 도시다. 개발부지에 포함된 구유지를 매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자산을 팔아서 남긴 매각대금이 그동안 어떻게 쓰였을까. 일반예산으로 편성돼 고스란히 사용됐다. 그럼에도 아직 어려운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우리 용산구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민ㆍ관이 함께하는 용산복지재단을 설립했으며, 재단을 통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구민들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미래세대와의 ‘공존’

우리 땅을 팔아서 생긴 이익금은 다시 땅에 투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후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2011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공유재산관리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 4년간 차곡차곡 모은 적립금으로 제주도에 휴양소를 매입했다.
영국의 정치가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행동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행동 없이는 행복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이 10년, 100년 후의 후손들을 위해 투자할 때라고 판단하고 과감히 행동에 옮겼다.
우리 용산구는 후손들의 번영을 위한 가치 있는 땅을 확보하는 것에서 나아가 구민복지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도 복지이며, 마음을 채워주는 도서관도 복지이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양소도 복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용산 구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주도에 휴양소를 건립하기로 결정을 내린 후 용산구 공무원들은
한라산 산간지역에서부터 해안가까지 제주도 곳곳을 조사하여 26곳의 대상지를 찾아냈다. 면밀한 비교분석을 통해 현재의
유스호스텔을 최종 대상지로 선정했으며, 용산구의회에서도 힘을 실어주었다.

제주휴양소의 ‘가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년),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2012년), 문화관광부가 주관한 ‘국내여행 실태조사’에서
3년 연속 국내여행지 만족도 1위. 제주도는 관광특별시로서의 경쟁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구는 제주도가 수학여행지로서 인기가 높다는 것에 주목했다. 2012년부터 4년간 용산구 관내
34개 초ㆍ중ㆍ고등학교의 수학여행지를 분석한 결과 제주도(42.6%)가 가장 많았다. 또한 휴양소가 들어서는 서귀포시 일대는
제2국제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된 것은 물론 제주도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중문관광단지와 중문해수욕장이 있어
미래가치가 밝다.
제주휴양소는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내년 4월 개관할 예정으로, 일반 구민들에게는 저렴하게 제주도를 관광할 수 있는 기회를,
저소득층에게도 좀 더 여행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6년 12월 6일 '내일신문' 기고


40
용산의 미래,. 어린이청소년종합타운
2016-12-05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용산

‘응답하라 1988’. 40대들에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 케이블 드라마다. 철 지난 드라마를 새삼 언급한 까닭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교육환경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극 배경인 쌍문동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 가능했다. 그 때만 해도 앞집, 뒷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으며 급한 일이 생기면 옆집에 아이를 맡기기도 했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그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시절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을 집어 삼킨 ‘최순실 블랙홀’은 교육계에도 많은 파장을 가져왔다.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한마디에 국민들이 느낀 상실감은 한 없이 깊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서울 용산의 희망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태아에서부터 청소년기까지 성장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하게 될 용산 어린이ㆍ청소년 종합타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도시는 희망이 없다. 6년 전 민선5기 용산구청장으로 취임을 하면서부터 보육ㆍ교육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용산구 교육정책의 최고 결실은 용산 어린이ㆍ청소년 종합타운이 아닐까 한다. 이 건물은
옛 용산구청 터에 들어선다. 구는 1978년 건립된 기존 구청 건물이 낡고 좁아 2010년 이태원으로 청사를 옮겼고,
2013년 주민위원회를 구성해 옛 청사 활용방안을 논의해 왔다. 공공청사 활용방안을 관이 아닌 주민 중심으로 모색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어린이ㆍ청소년 종합타운은 내년 11월 준공을 목표로 내달 중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다. 종합타운에는 구립 어린이집과
육아종합지원센터, 창의놀이터 등 육아에서부터 청소년 음악활동실, 원어민 외국어교실 등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선다. 여기에다 열린 도서관과 영유아 전용 도서관, 프로그램실 등을 갖춘 도서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인프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간 정이 넘쳤던 1988년 그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된 사회에 발맞춰 정책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지역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 어린이ㆍ청소년 종합타운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늘 용산의 첫걸음에서 세상의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2016년 12월 5일 '서울신문' 기고

39
“용산공원은 용산에 있다”
2016-07-11


“그저께 하오 2시쯤 일본 헌병 몇 명이 이태원 등지 둔지미ㆍ사촌리ㆍ와서ㆍ서빙고에 사는 동민 10명을 체포하여 명동 군사령부로 이송하였다” - 1904년 8월 11일자 <대한매일신보>

용산주민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1905년 러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용산에 군대를 주둔하기로 하고, 그해 8월 용산 일대 가옥과 무덤을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전답을 빼앗기고 가옥을 철거당하는 것도 모자라 조상 대대로 섬겨온 분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주민들이 한성부 앞으로 몰려간 것.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일본은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들을 체포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선조의 고통이 11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용산공원이 조성되는 이 땅은 40년 간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다시 70년의 세월동안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금단의 땅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용산구 면적의 8분의1을 차지하면서 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탓에 용산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도 컸다. 미군부대가
들여다보인다고 고층 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고, 아무리 급해도 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용산 주민이 미군들과 마주치며
받았을 직ㆍ간접적으로 입은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용산기지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 미군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동안의 아픔을 치유할 공원이
들어서는 것.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반기는 바다. 우리 용산구는 용산기지가 지닌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반영된 공원이
조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역사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공원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용산의 역사를 간직하고자 향토사학자와 함께 역사적인 공간을 발굴하고 기록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는 용산공원 조성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미군부대 내 근현대 역사 유적지들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중요성을 인식하는 탐방프로그램들도 운영 중이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인 ‘용산학(學) 강좌’를 시작으로 7월부터는 용산문화원 주관으로 매달 1회
‘미리 가보는 용산공원 역사문화탐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전문가들은 물론 대학교수, 언론인,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하는 학술포럼도 준비하고 있다.
포럼을 통해 나온 의견들을 수렴하여 용산구의 주장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4월말 국토교통부에서 용산공원 내 7개 기관 8개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
국토부의 안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토부는 또 다시 공원 활용방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걱정이 앞선다. 용산공원은 용산의 도시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이다. 용산구청장으로서 용산의 100년 미래를 위해 공원이
제대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왔고, 가장 가까이에서 미래를 함께할 사람은
용산구민이다. 우리 구민들에게는 공원 조성에 따른 정보공유는 물론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할 권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들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소통 창구가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2016년 7월 11일 '서울신문' 기고

38
한반도의 꿈 ‘통일 대한민국’
2016-02-23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전문 中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4조

헌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듯이 통일은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이자 7천만 우리 겨레의 꿈이다. 1945년 분단 이후 통일은 역대 정부의 국시(國是)였고, 통일은 국가적 목표였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냉전 체제라는 미명 아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탄생한 산물이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은 잠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우리민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너무나도 컸다.
한민족 공동체로서 오랜 역사를 함께 해왔지만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남겼고, 남북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분단이 가져다준 피로감에 우리 국민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무엇보다 지금의 분단
상황이 지리적ㆍ경제적ㆍ군사적ㆍ심리적ㆍ문화적 측면에서 많은 비용을 낭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통일이 쉽게 오지만은 않는다. 독일의 경우만 하더라도 통일로 인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준비 없는 통일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론 다음 세대를 살아갈 후손들까지 담보 하면서까지 통일을 이뤄야 하는 당위성은 어디에 있을까.
분단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통일만큼은 우리의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ㆍ태평양 시대 대한민국 재도약을 이끌 힘은 ‘통일’에서 나온다. 우리 스스로가 이뤄낸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힘이자
국민행복을 완성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통일은 대박
- 준비된 통일은 대한민국 재도약의 원동력!

“역대 대통령들은 이념뿐 아니라 국정철학, 시대상황, 정치적 배경이 모두 달랐지만 광복절 경축사에서 사용한 핵심 단어들만큼은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들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70년을 관통하는 최고 지도자들의 핵심 메시지는 ‘통일을 이룩하고 잘 살자’였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 언론사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를 분석한 결과 ‘통일’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정권은
달라도 통일에 대한 지도자들의 생각은 일맥상통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는 분단 이후 꾸준히 통일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1970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이산가족 상봉사업과 함께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0년 제5공화국에서 제안한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은 노태우 정부에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또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서는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정리됐으며,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으로, 이명박 정부 때는
상생공영정책으로 발전했다.
박근혜 정부 또한 통일에 대한 시선은 다르지 않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한민족의 원대한 숙원사업이라는 당위성이 아니라도 통일한국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는 열쇠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면, 지금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향후 45년간 우리가 부담해야할 통일비용은 4600조원
(연평균 103조)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국민들이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같은 기간 통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가치는 무려 1경4400조원에 이른다. 비용을 빼고도 1경이 남는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GDP(1500조원)의 6~7배가 되는 규모다.
무엇보다 45년간 3천만개(연평균 66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4년 세계무기
수입국 1위(9조2천억원 규모)가 대한민국이라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사적 긴장해소에 따른 사회적 갈등비용 경감까지
더해진다면 실로 우리가 얻는 이익은 상당하다.
동터오는 새벽을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필연(必然)적으로 온다. 아니,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일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기에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 이미 자기네들 방식대로 70년의 세월을 살아온 2천만명의
북한 동포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대박’을 실현하려면 정치, 경제, 행정체제 등 제도적인 통합은 물론 언어, 풍습, 생활문화, 교육 등 실질적인 사회통합의 문제까지 폭넓게 예측하고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과정
- 통일은 혼자 가는 열 걸음보다 함께 가는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통일은 장밋빛 미래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지난 70년 세월만큼 남북의 경제적 차이, 이념문제, 남북한 주민들 간
이질감과 이산가족문제까지 복합 다양한 문제들을 수반해서 온다. 갑작스레 이뤄졌다고는 하나 그 기회를 잘 잡은 독일의 경험은 한반도의 통일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1990년 통일한 독일과 우리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그 당시 동독은 세계 11대 공업국으로 안정된 공산국가였으나 북한은
현재 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또한 동독과 서독은 1972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민간인들의 지속적인 교류가 있어왔고, 동독 국민들은 서독 방송을 통해 서로의 이질감을 해소해왔다. 통일에 앞서 최소한의 민족 동질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어떠한가. 70년의 세월을 한숨에 뛰어 넘어 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소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명제가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신뢰하고 화합하는 일이 먼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이라고 해도 한 명의 의지로는 힘들다. 국민적 공감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국민 모두의 의지를 모아 더디게 가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통일의 과정에서 대북정책과 국방정책, 외교정책 등 중앙정부 주도의 사업과 함께 민간단체 간의 교류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이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는 통일방안으로 ‘통일준비의 지방화’를 강조했다. 남북한의 제도적 통일을 넘어 주민들 간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으로,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통일준비 지방화는 지역차원에서 통일준비과제를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자체의 남북교류 목적은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 분야에서 주민들 간 교류를 확대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생활현장형 교류인 셈이다.
이념적인 대립이 아닌 관광ㆍ의료ㆍ학술ㆍ문화예술ㆍ스포츠 등 사회 각 분야에서의 인적교류가 활발해질수록 통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경제협력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기업인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인도적 차원의 식량, 의료품 지원도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작은 과정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통일의 큰 주춧돌이 될 것이다. 통일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의지로 이뤄져야 한다.

2016년 1월 29일 '통일로 가는 길' 기고

37
용산복지재단에 희망을 싣다
2016-02-03

지역과 함께, 용산복지재단에 희망을 싣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은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 저소득층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자주 자살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치가 일반층보다 4.3배나 높게 나온 것을 볼 수 있죠.”
며칠 전 보도된 뉴스내용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용산은 삼성, 현대, GS, LGU+ 등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가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촌 이미지가 강한 동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자동 쪽방촌으로 대표되는 저소득층 비율이 적지 않은 양극화가 두드러진 도시다. 용산구청장으로서 ‘소외되는 구민 없이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두해 전 발생한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만큼 복지비용도 늘어나고 있지만 소외된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복지(福祉),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행복한 용산시대’ 또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비롯해 복지비용은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자치구 살림살이는 올해도 제자리걸음이다. 매년 모금하고 있는 따뜻한 겨울나기 성금도 한계가 있다. 세수부족 등의 이유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구민 복지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지난 6년 간 민선5ㆍ6기 용산구청장으로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역사회’로부터 그 해답을 찾았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복지실현을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선6기 최대 역점사업인 ‘용산복지재단’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 용산구는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복지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용산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지난해 1월 타당성 검토를 추진한데 이어 5월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마쳤다. 이후 <용산복지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재단 설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용산복지재단은 지역의 다양한 사회복지기관들과 연계해 정보를 공유하고 중복사업들을 조정하는 지역복지의 구심점으로, 숨어 있는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시기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복지재단은 오는 5월 기본 출연금 30억원으로 출발한다. 구에서 10억원을 출연하고, 아모레퍼시픽(주), HDC신라면세점(주), ㈜파리바게뜨, ㈜서부 T&D, 부영주택 등 관내 기업은 물론 배우 견미리 씨를 비롯한 구민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어 무난하게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재단의 성공여부는 지역의 참여에 달려 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는 탈무드의 명언처럼 이웃들과 나눈 희망의 불꽃은 용산의 미래를 더욱 더 밝게 비춰줄 희망이라고 믿는다. 복지기금이 정말 어렵고 힘든 구민들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다면 현재 목표로 하고 있는 100억원 모금은 문제없을 것으로 본다.

행복을 나누는 ‘용산복지재단’

앞서 언급한 기사내용을 보더라도 복지비용이 늘어나고 있지만 소외된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내 안에 만족스러운 감정이 넘칠 때 생겨나는 감정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싹이 튼다.
용산복지재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용산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로 도달하는데 있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이들에게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희망을 찾아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려는 용산 구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온새미로 담아내는 그릇이 될 것이다. 향후 복지재단이 안정화 궤도에 오르면 구민들이 직접 재단을 운영하도록 하여 공동체의식을 더욱 더 높일 계획이다.

2016년 2월 2일 내일신문 기고

36
2016 신년사
2016-01-08

존경하고 사랑하는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30만 용산가족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는 한 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아울러, 지난 한 해 구정에 보여주신 큰 관심과 사랑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인생은 봄날처럼 좋은 날만 이어지지 않고, 좋은 날과 나쁜 날이 번갈아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침체된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치솟는 전세값으로 많은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만 간 한 해였습니다.

그러한 서민들의 힘겨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저를 비롯한 우리구 1,300여 공무원들은 30만 구민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실 수 있도록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서 구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다양한 외부기관으로부터 큰 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에서 주관한 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종합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행정자치부로부터는 민원서비스 우수기관으로 재인증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합동평가 서울시 우수구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서, 각종 인센티브사업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모두 구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존경하는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금년은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시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민선 6기가 중반기를 넘어서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구민과의 약속인 공약사업을 비롯해서 주요 시책사업들을 보다 속도감있게 추진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복지용산을 만들기 위해서 용산복지재단 출범과 더불어 동 복지협의체를 활성화하여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어르신들의 활기찬 여가생활을 위해서 노인복지시설 보수 및 환경개선 공사를 실시하겠으며, 한남동과 원효로2동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노후한 시설은 개보수를 실시하여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용산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꿈나무 장학기금』을 금년에도 계속해서 조성해 나가고,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발굴해서 장학금을 지급하도록 하겠으며, 신생아에서부터 청소년까지 연계한 성장단계별 맞춤형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추진중인 어린이․청소년 종합타운 건립사업은 금년 내 착공을 목표로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구민들께 좋은 일자리를 찾아드리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지난해 12월 11일, HDC 신라면세점과 구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입점업체의 인력충원에 우리 구민이 최대한 채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겠습니다.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서 금년 상반기 완공을 앞둔 한남동 공영주차장 건설공사와 내년에 준공 예정인 한강로 방재시설 확충사업이 차질없이 완료될 수 있도록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챙겨보겠습니다.
또한, 해방촌 일대 도시재생사업을 비롯한 각종 도시개발 사업들은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서 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구만의 특화된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여 외국인 관광객 2천만 시대를 견인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만 120만명이 찾은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다채로운 내용으로 개최하겠으며, 전통공예문화체험관 건립과 더불어 앤틱가구거리를 용산의 새로운 명소로 가꾸어 나감으로써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겠습니다.

올 한해도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등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하지만, 처음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다 보면, 『30만 용산가족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금까지처럼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우리 용산가족 여러분!
매년 맞이하는 새해이지만, 매번 가슴 벅찬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지십니까?
언뜻 수년 전, 제가 본 영화 속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손뼉을 치며 “멋진 하루가 될거야”라고 외친다.

우리 용산가족 모두에게 멋진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丙申年 元旦
용산구청장

35
복지의 미래, 지역에서 답을 찾다
2015-11-26

지난 2월 일용직 오토바이 퀵 배달원 현영수(가명ㆍ46세) 씨가 퀵 배달을 가던 중 빙판길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응급실로 이송됐다. 가족 한명 없이 오토바이와 월세 방이 전부인 그에게 교통사고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상황에서 당장 병원비부터 걱정이었던 현 씨는 치료를 받던 중 몰래 도망쳐 세상을 등지려고까지 했다.
급박한 현실에 내몰린 그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이웃이었다. 30만 용산구민의 따뜻한 손길이었던 것이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80세가 넘은 어르신들까지 우리 용산구민이 모은 따뜻한 겨울나기 성금으로 한영수 씨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용산구는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을 통해 2014년 11월17일부터 2015년 2월16일까지 3개월간 약 10억원의 성금ㆍ성품을 모금했으며, 이는 다시 생활이 어려운 용산구민의 생계ㆍ의료비를 지원하거나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원비를 지원하는 호프업 드림업 사업,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를 비롯해 꿈나래ㆍ희망플러스ㆍ청년두배 통장 등 ‘희망드림 프로젝트 기금’으로 쓰였다. 올해도 지난 16일부터 ‘따뜻한 겨울나기’ 모금을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웃과 함께하려는 용산구의 세밑 풍경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난 6일 연탄을 사용하는 저소득층 70가구에 2만5000장의 연탄이 배달됐으며, 용산구청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방한복도 기부할 예정이다. 기부 받은 의류는 수선과 세탁 후 동자희망나눔센터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어려운 이들에게는 한없이 추운 겨울, 소외되는 구민 없이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자치구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기초연금이다 무상보육이다 해서 복지비용은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 수반되지 않아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는 더욱 더 힘들어졌다. 재정분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정부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답을 찾았다.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처럼 지역사회와 함께한다면 행복도시 용산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민선6기 용산구 최대역점사업인 ‘용산복지재단’도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용산구는 내년 상반기 재단 설립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용산복지재단은 지역 내 다양한 사회복지기관들과 연계해 정보를 공유하고, 중복되는 사업들을 조정해 꼭 필요한 구민들에게 맞춤형 복지를 지원하며, 주민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지역복지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용산복지재단의 성공여부는 지역의 참여에 달려있다. 복지기금이 정말 어렵고 힘든 구민을 위해 투명하게 쓰여진다면 기금은 자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업들과 단체, 구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용산구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는 탈무드 명언이 있다. 명언처럼 어려운 이웃들과 나눈 작은 희망이 여러분들께 더 따뜻한 빛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면, 어렵고 소외된 이들이 맞이할 올해 겨울은 조금은 덜 춥고, 덜 외롭지 않을까?
올 한해도 이제 달력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정들었던 지난 시간들은 추억으로 남기고, 다가올 새해 새아침을 희망으로 맞이하길 진심으로 기원 드린다.

2015년 11월 26일 시정신문 기고

34
자식된 도리로 어르신을 섬기다
2015-05-07

어버이날을 앞둔 지금, 민선 5기 구청장이 되는 것을 못보시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버지께서는 늘 “너는 용산의 아들이여, 용산 구민들의 자식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지금도 구정을 이끄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감사한 이름, 어머니

5년 전, 57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절대로 고향을 떠나시지 않으시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해 간신히 서울로 모셨다. 가족들이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텅 비어버린 집에서 적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인정이며 노인대학에 나가보시라고 몇 번이나 권유를 했지만 번번이 거절하셨다. 그 때마다 어머니가 촌사람이라 부끄러워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모처럼 일정이 한가했던 지난 주말, 어머니와 모처럼 함께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현관문 밖으로 나서면서 어머니가 걷기 불편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손을 잡아드렸다. 그런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오랜만에 잡은 어머니의 손이 많이 쭈글쭈글하고 거칠어져 있었다.

내 기억 속 어머니의 손은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손으로 내가 지쳐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잡아주셨다. 내가 잘 해내면 머리를 쓰다듬어 격려해주셨고, 동네 어귀에서 ‘엄마’라고 부르면서 집으로 뛰어가면 두 팔 벌려 맞아주셨다.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와 배고프다고 투정부리면, 없는 살림에 인상한번 찌푸리지 않으시던 어머니셨다. 내가 끙끙 앓을 때는 그 손으로 머리를 짚어주시고 배를 만져주시며 함께 아파 하셨다. 어머니의 손을 잡으니 어릴 적부터의 오래된 추억들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내가 동네 노인정이나 노인대학 안가고 싶은게 아니다. 혹시 내가 거기 갔다가 행동이나 말실수 하면 어떡하나... 구청장 에미가 아들한테 피해가 가면 어쩌냐... 차라리 그냥 안가는게 낫지...” 동네를 걸으시며 어머니는 느린 말투로 속내를 드러내신다. 당신 보다는 아들을 먼저 생각하셨던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내로, 칠남매를 낳고 팔십 평생을 사셨던 어머니가 지금 편찮으시다. 세상의 병명으로는 치매 초기라고 한다. 편찮으신데도 그저 아들 걱정뿐이시니 그 사랑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최근 만 65세 이상 어르신 인구뿐만 아니라 중풍,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치매로 고통 받는 어르신과 가족의 마음이 지금 딱 내 심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르신 복지는 한 개인,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할 문제다. 그래서 나는 지역의 어르신을 존경하고 섬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용산의 어르신들을 제대로 모시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보람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올해부터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어르신의 날’ 조례를 제정하여 특별한 이벤트가 열린다. 5월 16일(토) 용산가족공원에서 어르신의 날 행사가 열린다.
다양한 행사와 공연을 통해서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드릴 예정이다. 대사증후군 검사, 치매 검사 등 다양한 건강 진단을 직접 받을 수 있고 발마사지, 이미용, 네일아트, 실버요가, 체조, 스마트폰교육 등 다양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어르신 전문 복지 서비스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인들의 여가 지원 시설 '서계 노인여가 복합센터'가 지난 4월 7일 문을 열었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은 물론 독거노인을 위한 공동주거 공간도 마련됐다.
용산은 구립한남노인요양원과 효창동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 등 서울에서 80병상 이상의 도심내 노인 요양원을 2곳 운영하는 자치구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노인복지시설 보수와 경로당 프로그램 다양화, 어르신 일자리 사업 내실화로 어르신들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지는 용산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나는 우리 어르신들이 “용산에 살아서 참 좋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다. 앞으로도 무엇보다 자식된 도리로 용산 구민을 섬기고, 부모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구정을 펼쳐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15년 5월 7일 시정신문 기고

33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2015-03-11


최근 ‘조선왕조실록’ 복본의 완성이 임박했다는 반가운 뉴스를 접했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이 어려운 어투와 번역 오류의 문제로 현대화 사업 프로젝트에 돌입해 2026년쯤 새롭게 탄생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우리나라의 기록들을 복원해내고 역사적인 가치를 되살리는 이러한 작업들은 참으로 중요하다.

‘조선왕조실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이다.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약 470여년간의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조선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들이 남아있다. ‘의궤’는 국가의 중요 행사를 기록해서 후대에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 유네스코 기록유산만 난중일기, 훈민정음, 동의보감, 일성록, 고려대장경판 등 10종에 달한다. 이들 모두는 하나같이 당시 역사가 세세하게 담겨져 있는, 사실에 입각한 기록들이라는 면에 큰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록들이 없었다면 과거의 사람들이 붓끝으로 써놓은 역사를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었을까. 우리 선조들은 기록을 중시했고 과거를 비추어 현재를 들여다볼줄 알았던 민족이었다. 작은 나라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오천년 역사를 찬란하게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기록을 중시했던 것에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기록들을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외국 사람들도 몇 백년 아니 몇 천년전 동방의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자기 나라의 언어로 읽으면서 살아있는 세세한 역사적 기록들에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그리스 신전에 비해서도 훨씬 더 가치있는 세계적 문화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70억 인구중에 십분의 일 혹은 백분의 일만 읽어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세계인들이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용산을 다시 역사의 중심에 놓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역사는 미래를 조명하는 거울이다. 그를 기반으로 행정을 펼쳐나가는 것이 구청장으로서 나의 소임이다. 사실(史實)을 뛰어넘거나 사실(事實)을 이기는 진실은 없다. 그래서 용산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발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7월에는 용산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A.D.97~1953)’를 발간했다. 100년간 외국군 부대가 주둔하며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 있던 용산미군기지에는 용산 아방궁(일제 시기 조선 총독 연회장), 충혼비(만주사변시에는 일본군 전사자 기념비였으나 현재는 미군 전사자 기념비로 쓰임)와 같은 다양한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올 2월에는 용산구 역사 스토리텔링 사진집 ‘용산을 그리다’를 발간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가설된 한강철교 공사 현장 등 역사적 현장에서부터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까지 용산의 옛사진 230여점을 담은 역사스토리텔링 사진집이다.
외국에는 동네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지역 박물관이 많다. 30만이 살고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우리 용산도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용산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유물수집위원회를 구성하고 곳곳의 지역 유물을 모으고 있다. 정성을 들여서 찾고, 역사적 의미를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해야할 일>
과거를 되살리는 것만큼 오늘을 기록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에 대한 기록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 용산은 현장 소통, 동 업무보고회, 구의 토지와 재산 등 행정적인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고 책으로 펴내고 있다.

나는 늘 ‘역사에 남는 구청장’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일을 잘해서 기록에 남는 것도 좋겠지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구청장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우리가 기록으로 남기면 후손들이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채울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기록의 역사가 될 것으로 믿는다.

2015년 3월 10일 내일신문 기고

32
[신년사] 성장현 "30만 구민 모두 행복한 용산시대"
2015-01-02

사랑하고 존경하는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성실과 화합을 상징하는 양의 해를 맞아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소원성취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30만 용산가족의 변함없는 응원 속에 사람 중심의 구정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방과후학교 대상 수상에서부터 미래경영대상, 무궁화대상, 소셜미디어 대상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서울시 인센티브 수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는 모두 용산구민들의 성원과 격려 덕분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지난 해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2015년 새해에도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이루기 위해서 용산가족들과 함께 힘차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주변의 이웃들을 돌아보며 다함께 행복한 복지용산을 만들겠습니다. 공공복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도권 밖 저소득 위기가정을 돕기 위한 용산복지재단 설립을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용산의 미래 꿈나무들이 마음껏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개선하겠습니다.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해서 누구나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용산으로 만들겠습니다.

아울러 지역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지원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찾아서 용산의 경제를 보다 활기차게 만들겠습니다.

2015년은 민선6기의 실질적인 원년으로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이루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용산 가족 한분 한분의 작지만 소중한 꿈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저와 우리구 전 직원은 새해에도 구민들의 작은 목소리까지 소홀히 듣지 않겠습니다.

용산 가족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드리며 여러분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1
제21회 구민의 날 기념식 축사
2014-10-17

사랑하고 존경하는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올해로 스물 한번째를 맞는 용산구민의 날을 빛내 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구청장 성장현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용산가족 여러분들과 함께
스물 한번째 구민의 날을 기념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평소 부모님께 효도하시고,
우리 용산을 위해서 나눔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시는
구민대상 수상자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도 채 석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보면, 북한과의 관계는 경색되어 가고 있으며,
일본과의 관계 또한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연초부터 여러 안전사고가 발생을 해서
많은 분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고,
군대 총기사건과 폭력사태로 인해서
자녀를 군에 보내신 많은 부모님들이 불안해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지난 7월, 민선 6기가 출범을 했습니다.
저는 선거 기간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구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용산 가족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무엇을 바라시는지 깨달을 수 있는,
저에게는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구민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 나누는,
때로는 친구같고 때로는 부모형제같은 구청장이 되어야겠다는
초심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용산가족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30만 구민들의 힘겨운 삶에 위로가 되어드리기 위해서,
구민들의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어 보듬는 일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정의 중심축을 복지와 안전으로 돌려놓겠습니다.
복지부서를 분과하고, 안전 전담부서의 신설을 통해서
현장에서 우리 구민들의 삶을 돌보는 일에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선, 어르신들에 대한 돌봄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들어, 오랜 병간호 끝에 배우자와 함께 목숨을 끊는
어르신들의 가슴아픈 사건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르신들의 돌봄을
더 이상 가정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오신 어르신들께,
이제는 우리가 버팀목이 되어드리고 힘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구는 거점별로 “용산실버홈”을 운영을 해서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의 청년세대들이 어르신 세대를 위해서 봉사하는
“은빛과 함께” 자원봉사단의 활동을 강화해서
세대 간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어르신들이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실 수 있도록
여가생활 지원에서부터 방문 보건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용산복지재단을 설립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구민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흔히들,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 제공이라고 합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야말로 구민 행복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청년층의 고용률은 40퍼센트에 불과하고,
전체 근로자의 30퍼센트, 그리고 20대 근로자의 50퍼센트가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인 청년들,
그리고 은퇴 후 노후를 편히 보내셔야 할 어르신들까지
불안과 차별의 그늘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의 통합,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일자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구는 앞으로 4년동안,
청년에서 어르신까지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를
8천개 이상 창출하겠습니다.
관내 우수기업, 협회와 같은 다양한 기관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사회적 경제기업, 마을기업과 같은
주민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확대하겠습니다.
아울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없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한 경제적인 지원을 넘어서서,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써
당당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직업재활시설 확충과 더불어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마음의 장벽, 제도의 장벽을 허물고,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입니다.
보육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부모님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드림으로써
여성들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출산율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구는 민선 6기에도 보육시설 확충에 힘쓰겠습니다.
동별로 2개소 이상씩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해 나가고,
용산 어린이플라자를 건립해서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겠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사교육비 부담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교육부에서 주최한
“방과후학교 대상”을 수상하고 왔습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곧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신념을 갖고,
공교육 강화를 위해서 그동안 해온 노력이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교연합 공교육 특화 프로그램”은
사교육에서는 할 수 없는 진로적성 탐구,
그리고 심화된 전공 연구가 가능해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지방의 여러 교육청, 그리고 자치단체에서
우리구를 방문했습니다.
앞으로도 원어민 외국어교실과 꿈나무 장학기금을 포함해서
우리 용산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자원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용산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십여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것은 개발 논리였습니다.
개발이 곧 복지고, 경제이며,
발전의 모든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개발만 쫓아서는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가슴아픈 사건들이 일어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진하겠습니다.
도시의 외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좋은 용산”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개발사업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한남뉴타운은 서울시와 꾸준한 협의를 통해서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서부이촌동은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시관리방안이 수립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30만 구민들이 안전사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가실 수 있도록 “안전한 용산”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구는 지난 2012년부터,
전국 최초로 관내 하수관로에 대한 CCTV 촬영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남동, 용문동을 시작으로 해서,
오는 2016년까지 총 연장 274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수관로 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며,
이로 인해 하수도 파손으로 인한 도로함몰과 같은 위험요인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총 500억에 달하는 예산을 들인
한강로 일대 방재시설물 확충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하고,
안전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담부서를 신설을 해서
자연재해, 그리고 인재(人災)로부터 안전한 용산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용산가족 여러분!
저는 얼마 전, 헤럴드경제에서 주최한
“미래경영대상”을 수상하고 왔습니다.
“미래도시 용산”이라는 우리구 브랜드에 걸맞게
미래 성장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
구정 각 분야별로 노력해 온 결과,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30만 용산가족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우리구 1,300여 공직자들과 함께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구민들의 일상을 챙기는 일,
당장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우리 구민들의 삶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우리 용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기 계신 우리 용산가족 여러분들과 함께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항상 함께 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용산구민 여러분!
올해로 스물 한번째를 맞이하는 용산구민의 날을 기념해서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준비했습니다.
오늘만큼은 그동안 일상에 지친 여러분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절기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여러분들의 가정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2014. 10. 17.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

30
용산 장외발매소 시외곽 이전이 답이다
2014-07-25

현대는 속도의 사회다. 빠른 속도로 남보다 더 멀리 가는 경쟁에 지나치게 매달리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빠르게 멀리 가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면 헛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세상 일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잠시 속도를 늦추고 ‘맞는’ 방향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용산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이전 문제를 생각해보자. 한국 마사회는 마권장외발매소를 기습개장 했고, 구민들은 이 시설이 서울시 외곽으로 나가길 바란다. 마사회는 기습개장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좀 더 멀리 갔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전혀 ‘맞는’ 방향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마사회 장외 발매소 개설승인절차 및 요건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장외발매소 이전시에는 가급적 도심 외곽 지역을 우선 검토하되, 지역 의견을 수렴하는 등 민원 발생 소지를 최소화 한 후 승인 신청을 해야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동일 지역내 이전시에는 제외’ 라는 규정이 있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용산구 주민과 여론 수렴 절차 없이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권장외발매소는 사업의 특성상 주민의 의견 없이 ‘기습 개장’을 해선 절대 안된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는 성심여고와 불과 232m 떨어져 있다. 학교를 비롯한 인근 주민의 여론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외 규정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해부터 용산구와 주민들은 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용산 마권 장외발매소의 서울시 외곽 이전’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항의 방문을 했고, 12만명이 서명한 반대서한을 전달했다. 여학생들은 ‘학교 옆 경마장은 안된다’면서 거리에서 촛불을 밝혔고, 학부모들은 마권장외발매소 정문 앞에서 천막 시위를 했다.
 반면, 지난 6월 28일 마사회는 마권장외발매소를 기습적으로 시범 개장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마권장외발매소 이전을 철회하길 권고한 6월 16일부터 겨우 열흘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시, 용산구, 서울시 교육청, 종교계, 정치권 등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는데 마사회는 향후 3개월간 주말마다 시범 개장을 할 계획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마사회의 관리·감독을 맡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뒷짐도 문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지금의 갈등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권장외발매소는 서울시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도심 지역의 장외발매소는 사회적 폐해 등을 고려해 도심 이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더 많이, 돌이킬 수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전에 잘못된 단추를 고쳐 끼워야 한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닐 때 다시 되돌아가는 것, 방향을 수정할 수 있을 때 고치는 것이 더 큰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다.
 지금이라도 마사회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단으로 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기 바란다. 그래서 학생들은 마음 편히 공부하고 학부모와 교사들도 평소 모습으로 돌아가길, 더 이상 주민들이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지 않길 바란다.

2014년 7월 25일 서울신문 기고

29
행복 용산을 꿈꾸다
2014-07-09

선거가 끝났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초여름을 보냈다. 구민들은 내게 ‘고생이 많았다, 힘들었겠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 기간동안 나는 좋아하는 일을 정말 많이 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4년 동안 구청장으로 일하다보니, 결재하고 처리해야할 행정적인 업무들이 참 많았다.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만났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구민들을 다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선거 운동 기간은 다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그동안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해야할 일은 또 무엇인지 고민하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르신, 성장현입니다.”라는 인사에 먼저 알아봐주시고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님, “우리 성 구청장의 진심을 나는 알지”라며 제 두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 선거 운동 기간에 쉼없이 만나뵌 많은 분들의 얼굴과 이야기가 아직도 내 머리와 귓가에 선하다.
나는 작은 칭찬에도 어린 아이마냥 행복해졌고, 구정에 대한 관심의 또다른 표현인줄 알면서도 질책을 들을 때는 마음이 괜히 짠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용산 가족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사랑이라는 생각에 구청장으로 재선되면 정말 잘해야겠다고 다짐도 많이 했다.
여러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그동안 내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고, 나만큼 지역을 속속들이 다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 운동 기간 내가 그동안 너무도 부족했다는 것을, 내가 그동안 둘러보지 못했던 곳,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부끄러웠다. 이렇게 용산 사람들과 용산 곳곳과의 만남을 통해서 앞으로 4년을 운영해나갈 새로운 힘을 얻었다.

다시 소통이다
민선 6기 출범을 앞두고 지난 6월 25일 용산의 단체 대표들 30여명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용산 리더스클럽 소통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교구협의회, 녹색어머니회, 문화예술인총연합회, 성평등 정책위원회, 한국음식업중앙회, 의사회, 중증장애인 독립생활연대 등 30여곳이나 되는 단체의 대표분들이 바쁘신 중에도 쉽지 않은 걸음을 함께 해주셨다.
앞으로 민선 6기 구정이 담아내어야할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할 일이 많은 자리니 건강도 잘 챙기라고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개인이 아닌 단체 혹은 용산구 전체의 입장을 대변해서 말씀을 해주시다보니 듣는 내내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용산 가족들과 만나 나눌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용산’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밀한 부분들을 채워주시는 것은 우리 용산 가족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기회가 된다면 구청장 후보로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 다른 후보들과도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 용산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발전 방안을 제시하셨던 다른 후보들의 고견도 구정의 적재적소에 반영한다면, 용산 발전의 큰 토대가 될 것이다.

용산 가족 모두의 행복을 꿈꾸며
선기기간 동안 아침마다 출근하시는 주민들 앞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오늘도 꼭 행복하셔야 합니다” 였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반갑게 화답하며 인사를 나눠주셨다.
아마도 ‘행복’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란 이루고자 하는 꿈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머무르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 그것이 가족이 되었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일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이번 민선 6기 구정의 지향점을 ‘행복한 용산’으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민들과 끊임없이 만나면서 우리 용산 가족들이 진정 바라는 삶은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구민들이 꿈꾸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우리 행정과 어떻게 연결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구민들이 바라는 행복한 용산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구정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해나갈 생각이다.
용산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구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구청장으로서 더 바랄게 없겠다. 그러러면 구민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행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앞으로 4년, 용산의 변화와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민선 6기 용산은 용산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구민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정을 펼치겠다고 다짐해본다.

2014년 7월 4일 내일신문 기고

28
제39대 용산구청장 취임 인사 올립니다.
2014-07-01

사랑하고 존경하는 30만 용산가족 여러분!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

민선 5기를 마무리하고 민선 6기가 새롭게 출발하는 오늘,
저는 30만 용산가족의 부름을 받아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다시 한번 용산구청장으로 선택해 주신
구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용산가족 여러분!
저는 4년 전 오늘, 이 자리에서 벅찬 가슴으로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0년동안 야인 생활을 하며 우리 용산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심했던 시간들,
그리고 구청장으로 취임한 이후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까지,
저에게는 참으로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민선 5기,
우리 용산은 많은 변화를 일구어 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민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구정에 대한 구민들의 신뢰를 회복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구청장실을 벗어나서 용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13,000분이 넘는 구민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소중히 새겨듣고,
2,000건이 넘는 고민거리를 해결해드렸습니다.
취임 당시 25억이었던 교육예산은
재임기간 중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늘어난 예산으로 꿈나무 장학금을 조성하였고,
전국 최초로 원어민 외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또한, 서울의 25개구 중에서
80병상이 넘는 구립요양원 두 곳을 운영하는
유일한 자치구가 되었으며,
7,000명의 구민들에게 일자리를 찾아드림으로써
땀흘려 일하는 기쁨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자금난을 겪고 계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서
중소기업육성기금 대출금리를 서울시 최저 수준인 2%로
과감히 인하를 단행했으며,
자치구 최초로 중장기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서
용산의 20년, 30년을 내다보는 미래의 청사진도 완성을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소월길 90계단 엘리베이터 설치, 이촌동 전선지중화 사업과 같이 오랜 기간 구민들이 애타게 바라셨던 숙원사업들도
하나하나 해결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구민 행복지수 일등구를 비롯해서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수상, 안전행정부 민원서비스 우수기관 인증,
지방자치 경영활동 경쟁력향상 전국 1위,
그리고 청렴도 측정 전국 최우수 1등급 수상과 같이
권위있는 외부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용산은
30만 구민 한분 한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문화와 예술이 삶 속에 녹아있는 공간에서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골목골목에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이 넘쳐나고,
삶에 지친 고단한 어르신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래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그런 용산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이루기 위해서
민선 6기,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고,
구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미래에 대한 가장 가치있는 투자는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우리의 10년 후, 100년 후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도시 용산을 만들겠습니다.

민선 5기에 조성하기 시작한 꿈나무 장학기금을
당초 목표액인 100억을 달성할 때까지 꾸준히 적립해서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장학금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동별로 작은 도서관을 1개소씩 조성하고,
용산에 소재한 70여개의 대사관과 같은 지역자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습니다.
또한, 학생들 개개인의 적성에 맞춘
“고교연합 공교육 특화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 교육청의 용산 이전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해서
용산의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
우리 30만 용산구민들이 재난이나 범죄에 대한 걱정없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한 도시 용산을 만들겠습니다.
최근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인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안전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서 우리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계십니다.
최소한 우리 용산에서만큼은 안전사고로 인해서
구민들이 가슴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깊게 살피겠습니다.
우선, 재난위험시설물과 도로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보다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503억이 투입되는 한강로 일대 방재시설물 확충사업을 통해서
침수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가겠으며,
CCTV 성능을 개선하고
경찰서를 포함한 유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서
구민들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생활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이제는, 한 도시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바로 “문화”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용산의 지역문화를 활성화해서
글로벌 관광도시로 육성해 나가겠습니다.

용산은 이태원관광특구, 전쟁기념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산 관광버스터미널 부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관광호텔이 들어섭니다.
미군기지 이전 후에는 미국의 센트럴 파크에 비견될 만한
용산공원도 조성될 계획입니다.
이 모두가 제 임기 안에 마무리가 되는 사업들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관광자원과 인프라를 연계한
문화․관광벨트를 조성해서
우리 용산이 대한민국 관광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장, 그리고 개발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절,
우리 구민들의 삶은 소외되어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30만 용산구민 모두가 함께 누리고, 함께 잘사는
복지도시 용산을 만들겠습니다.

몇 달 전, 생활고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송파 세모녀 사건과 같이
공공복지의 한계로 인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용산복지재단”을 설립해서
빈틈없고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산율,
그리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한
육아와 어르신들에 대한 돌봄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거점별로 용산실버홈을 운영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서
점점 고단해지는 우리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서 명품도시 용산을 만들겠습니다.

이태원은 한 해에 내․외국인 1,0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한 곳입니다.
그러나, 주차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한남동에 시비와 구비 250여억원을 투입해서 추진하고 있는
공영주차장 입체화 건설공사를 차질없이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청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임기 내에 맞춤형 좋은 일자리를
5,000개 이상 창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서
시설 현대화사업에 집중 투자하겠으며,
용산전자상가에 공동마케팅 및 국내외 기업 A/S 집약센터를
조성해서 침체된 용산전자상가를 활성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용산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이제는 변화해야만 한다는 구민들의 절실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방자치 20주년을 맞는 “6기 민선시대”,
저는 추상적인 이념 논쟁과 정파적인 입장을 모두 떠나서
오로지 구민들의 행복만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계층 간의 갈등,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만 가는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 구민들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간의 신뢰, 그리고 화합이 중요합니다.
더 살기 좋은 용산, 보다 더 행복한 용산을 만들기 위해서
지난 세월동안 갈라졌던 우리 구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힘쓰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 뒤에 구민들이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되는 구청장이 되기 위해서,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구민 여러분들의 소망,
그리고 꿈을 지켜 나가는 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제39대 용산구청장으로써 소임을 다할 것을
30만 구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 이 순간에도
세월호 사건으로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학생들,
자식을 가슴에 묻고 깊은 슬픔에 빠져 계시는 학부모님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차디찬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실종자들을 생각합니다.

지방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무한한 책임의식을 느낍니다.
더 이상 이 나라에,
이런 가슴아픈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일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용산의 1,300여 직원들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산,
그리고 30만 구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시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민선 6기의 첫 출발에
용산가족 여러분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7
성장현 용산구청장 당선 인사 올립니다.
2014-06-05

용산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 당선 인사 올립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좋은 결과로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한 용산시대, 중단 없는 용산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30만 구민과 함께 용산호를 살기 좋은 용산으로 이끄는 노련한 선장이 되겠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6
그리운 이름 아버지
2013-10-28

그리운 이름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라는 이름은 환갑이 다되어가는 아들에게도 가슴 울컥한 그리움이다.
아버지는 하루세끼 끼니조차도 제대로 해결 못할 만큼 가난을 대물림해 받은 농사꾼으로 태어나 소학교도 마치지 못하셨다. 80평생을 그저 ‘콩 심어야 콩나고 팥 심어야 팥나는’ 줄 아는 순박한 마음으로 땅을 파고 사셨던 분이다.
젊었을 때는 지독한 애주가셨지만 내가 중학교를 입학하던 순간부터 그 좋아하시던 술을 아예 끊으셨다. 삼베옷과 고무신으로 평생을 사셨지만, 일곱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못난 아들이 서울 용산에서 구의원에 당선되었을 때도, 민선 2기 구청장에 당선되었을 때도 ‘너무 좋아하면 마가 낀다’고 크게 소리내어 웃지도 못하셨다.
2009년 11월 23일, 배가 아프시다고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셨다가 만 하루만에 유언 한마디 없이 84세를 일기로 먼 길을 떠나셨다. 8개월만 더 사셨어도 아들이 민선 5기 용산구청장으로 취임하는 모습을 보셨을텐데 늘 아쉽고 죄송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흐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섬김, 사회적 책임 나누는 일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살아계셨을 때 잘 모시고, 잘 돌보아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용산구청장이면 이제 용산 사람의 아들이 된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용산구청장으로서 우리 지역의 3만 5000 어르신 모두를 내 부모처럼 잘 모시는 일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받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교육열이 높고 자식 사랑에도 헌신적이다. 지금 어르신 세대는 헐벗고 굶주린 보릿고개를 넘어오면서도 ‘우리네처럼 답답한 세상 살게 할 수는 없다’며 자식들을 줄줄이 가르치느라 허리를 더욱 졸라맸던 분들이다. 일제 36년과 6.25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왔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여기까지 밀고 오신 분들이시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어르신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여름, 두 곳의 구립요양원 개원과 증축을 계기로 ‘어르신 전문 복지 서비스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립한남노인요양원은 단국대학교 이전 부지내 아파트 시공사로부터 부지를 기부채납받아 지하 2층 지상 4층, 총 81병상 규모로 완공됐다. 이어 효창동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은 증축 공사를 통해 기존 67병상에서 91병상으로 24병상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용산은 기존 67개에서 총 172개의 병상을 보유하게 됐다. 도심에 80병상 이상의 요양원 2곳을 보유한 곳은 용산밖에 없다. 어르신들은 물론 가까운 곳에 부모님을 모실 수 있게 된 가족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용산구는 한국영상자료원과 협약을 맺고 어르신들이 관람하기 좋은 영화를 선정해 매월 1회 무료로 상영한다. 또한, 어르신들이 다니시기 편하시라고 특별한 셔틀버스도 운행 중이다. 고령자 취업 알선센터와 일자리 지원을 통해 어르신들의 취업의 숨통을 틔워놓았다. 경로당 운영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어르신들이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독거 어르신을 위한 ‘행복 도시락’을 통해 사회와의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어르신 복지 정책은 언제나 진행형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어르신 복지 정책이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당장 생색나지는 않겠지만, 우리 용산의 어르신 복지 사업이 어르신들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를 바란다.

예전부터 효도의 기본은 자식들이 편안하고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용산 어르신들을 위한 진정한 효도는 우리 구의 진정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끼리 “자네 어디 사나?”하는 질문에 “나, 용산 사네” 하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생전 아버지께 못다한 효도를 드리는 마음으로 우리 용산구를 어르신 복지 일등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2013년 10월 25일 내일신문 기고

25
백범기념관과 이봉창 생가
2013-06-12

백범기념관과 이봉창 생가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廬 難成大業). 사람이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원대한 장래를 설계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 말은 1910년 3월, 안중근 의사가 만주 뤼순(여순) 감옥에서 남긴 어록중 하나다. 자신의 안위보다 민족을, 조국을 먼저 생각했던 우리 선열들의 나라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나라를 위해서 오로지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분들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애국선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호국보훈 의식 및 애국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다. 6월 한달 만큼은 애국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자는 뜻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의열사제전

용산에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애국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는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장소가 효창원과 인근에 있는 백범기념관이다.
용산구 효창동에 소재하고 있는 효창원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분 삼의사의 유해와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용산구는 2011년부터 효창원 7위 선열에 대한 의열사 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나는 제관인 초헌관으로 참여한다. 유족과 내·외빈을 비롯한 구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유관기관과 각 기념 사업회에서 정성껏 제수를 준비하여 합설제례를 올리는데, 나는 이 자리에 서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백범기념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범 김구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나에게도 백범기념관은 좀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98년, 일생을 조국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기념관 건립 논의가 본격화되었을 때, 이수성 전 국무총리께서 위원장을, 내가 용산구 추진위원장을 지냈다.
과거에 머무르기만 하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는 백범기념관의 일부를 교육 문화시설로 만들 것을 강력하게 건의하기도 했다. 백범기념관이 단지 역사를 기념하는 곳을 넘어서서, 구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서울 시민들이 자주 찾을 수 있어야 진정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효창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항상 마음 한켠이 무겁다. 그것은 효창공원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생가 터 때문이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는 동경에 있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일본국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후 체포되어, 그 해 10월 이찌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났으나,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죽음이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에 큰 획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봉창 의사의 생가가 용산구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번 출구 뒤, 조그마한 화단에 있는 비석 하나가 이곳이 이봉창 의사의 생가 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젊음을 조국을 위해 바친 애국선열에 대한 예의로는 너무도 부족해 지나갈 때마다 안타깝다. 생가 터조차도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으니, 용산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호국보훈의 달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우리 용산에 민족 정기를 되살린 애국선열들을 모시고 있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애국선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서, 우리 애국 선열들의 위상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애국 선열들의 후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봉창 의사의 생가터 복원도 이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의열사 제전 역시 한 지자체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있게 해준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자리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2013년 6월 11일 내일신문 기고

24
통 큰 "화합"의 정치를 기대한다.
2013-02-21

통 큰 ‘화합’의 정치

사람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 사람이 관련된 문제에 정치가 개입되지 않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정치가 건강해야 사회가 아름다워지고 국민들이 행복해진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지지하는 후보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을, 또다른 세대에게는 희망을, 모든 국민에게 번영된 국가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통령 선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리고 오는 2월 25일, 새로운 대통령과 새 정부가 출범한다.

‘세대·계층간 갈등 해소’의 과제

삶의 방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무엇이 되느냐’에 의미를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사느냐’를 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무엇’이 되기 위해 ‘어떻게’를 무시한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 되기만 하면 ‘어떻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는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넓게 퍼져 있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그동안 해묵은 문제로 여겨왔던 지역 갈등, 이념 논쟁 외에도 세대간, 계층간의 갈등을 너무도 극명하게 목격하게 됐다. 이 작은 나라에서 나뉘고 갈라져야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싶어 너무도 안타깝다.
옛말에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했다.
나는 새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국민들이 진정 행복한 정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성공적인 국정’을 운영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중앙 정부의 성공은 곧 서울시, 그리고 우리 용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새 정부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우리의 후대들을 위해서도 꼭 성공해야 한다.

갈등 해소를 위한 용산구의 도전

민선 5기가 출범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용산구의 발전을 위해서 하나로 뭉치자고 했다.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우리 구는 당과 계파간 혹은 구청과 구의회간의 갈등이 없는 ‘조용한’ 구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신년 인사회’나 ‘구민의 날’처럼 용산구에서 이루어지는 큰 행사마다 당을 가리지 않고 전직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을 모신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용산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지역 원로로서 존경하고, 이 분들로부터 구정에 대한 고견을 듣는 기회와 함께 안부를 살피겠다는 생각이 담긴 일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1월말, 용산구는 명예구청장 제도를 도입했다. 민선 5기 구청장 선거에 나와 함께 후보로 출마하셨던 분, 예비 후보로 등록해 선거 운동은 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고 결국 꿈을 접어야 했던 분들이 명예구청장으로 함께 해주셨다. 이에 대해 한 보도 매체에서는 ‘용산구청장의 정적(政敵)과의 동행’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니 주변에서는 이를 다소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그동안은 경쟁자여서 각을 세웠더라도, 출마를 결심하고 구청장이 되고자 했던 분들은 구민 행복과 용산 발전을 위한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이 구청장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러한 생각들까지도 사장된다면, 우리 구 입장에서는 큰 손해다. 용산 발전에 대한 그분들의 비전이 펼쳐질 때 용산의 발전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세대 간 갈등 해소를 위해서 관내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경로당 어르신들간의 ‘대화와 만남의 자리’를 정례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생들이 경로당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경로당 어르신들은 학교를 방문해, 세대간 소통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작은 노력이 큰 물줄기를 바꾼다. 업적과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원칙’이다. 그리고 당장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들간의 소통’이 지금 우리가 시급히 풀어야할 가장 큰 과제이다. 지금 새롭게 불거진 세대간·계층간 갈등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이 사분오열되기전에 말이다.

2013년 2월 20일 내일신문 기고

23
용산인이여 영원하라!
2013-01-11

‘용산인(人)’이여 영원하라!

‘애플빠’의 열렬한 지지로 세계 1위 기업에 등극한 애플처럼 ‘용산인(人)’이 있는 한 ‘세계의 중심, 용산’도 멀지 않다.

지난해 9월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이 6580억 달러로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원화로 환산하면 약 700조에 가까운 금액으로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3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스티브 잡스라는 불세출의 리더와 끊임없는 혁신, 사원들의 노력으로 일군 성과임에는 틀림없지만 애플에 열광하는 소위 ‘애플빠’들의 지지가 원동력이 됐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세계 최고 프로축구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영국의 ‘훌리건’과 일본의 만화·게임 전문가이자 존립 기반인 ‘오타쿠’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아이돌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매니저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갖고 있는 ‘오빠부대’를 예로 들 수 있다.

지나친 관심과 과도한 애정이 때로는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애플’이, ‘프리미어리그’가 지금의 번영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까?

용산의 미래를 위한 다짐
필자가 지난 2000년, 잠시 구청장에서 물러나 십년 동안의 야인 생활을 거치고 2010년 여름, 민선 5기를 출범시키며 구청장으로서 다짐 한 것이 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직원들이 가지고 온 문서만 결재 할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나가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호흡하는 ‘이웃’이 돼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것이다. 이런 배움을 통해 나 자신이 용산의 미래를 위한 주춧돌이 돼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시 한번 용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지금도 새벽 6시면 집을 나서 밤 10시에 귀가하는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용산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용산인(人)들의 꿈과 희망
필자는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 대화의 날’로 지정해 하루 종일 주민을 만나왔다. 지난 2년간 총 72회를 운영, 1,000여명의 주민이 구청을 방문했다. 자식 결혼 좀 시켜달라며 눈물을 보인 어르신부터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하러 온 중년 남성 등 각양각색의 바람과 기대를 품은 채 나를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이분 모두가 나에게는 스승이요, 용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분들이었다. 지난 해 5월부터 10월까지는 16개 동을 직접 방문하여 ‘동 현안 소통’을 진행했다.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시설은 없는지 주민을 불편하게 하는 요인은 없는지 구석구석 면밀히 살폈다. 주민의 입장에서 건의하는 수많은 내용을 모두 기록하여 궁금증을 해소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어린이집, 경로당 등 복지시설을 방문해 어린이, 학부모는 물론 어르신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살기 좋은 용산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었다. 이 과정에서 5,000여명의 주민을 만났고 600여건의 소중한 건의사항을 접수, 개선에 온힘을 기울였다. 이 모든 것이 용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들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또 용산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봉사 단체가 있다. “우리 동네 어르신은 내가 돌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빨래, 설거지는 물론 어르신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400여명의 은빛봉사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지역 103개 교회는 종파와 관계없이 용산을 위해 합심, 교동협의회를 구성하여 소외 이웃을 보듬으며 함께 사는 용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밖에도 용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행보는 끝이 없다. 고사리 손으로 동전을 모아 불쌍한 친구를 돕고 싶다고 필자를 찾아온 어린이집 아이들, 십시일반 용돈을 모아 성금과 함께 애장품까지 선뜻 내놓은 용산공고 학생들,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음에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군인의 의무라며 봉사에 여념이 없는 미군병사들.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그저 용산이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순수한 ‘용산인(人)’들이다. 대를 이어 동자동에 쪽방촌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 목사님은 필자를 부끄럽게 했고 용산이 좋아 솔깃한 조건과 화려한 자리도 마다한 채 재능기부로 동네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이태원의 젊은 작가들을 보며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용산(龍山)의 해
필자가 민선 5기를 출범한지 2년 반. 벌써 2013년 계사년의 해도 밝았다. 올해를 상징하는 뱀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지만 인내의 상징이기도 하다. 500년을 인내하여 이무기가 되고 다시 500년을 감내하여 용이 되는 동물이 바로 뱀이다. 어찌 보면 용산도 오랜 세월을 인내해 왔다. 군사·철도기지로 이용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미군부대의 오랜 주둔으로 제대로 된 꿈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용산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용산인(人)’이 있는 한 필자는 두려움도 걱정도 없다. 뱀이 1,000년을 인내하여 용으로 승천하듯 2013년은 ‘세계의 중심, 용산’으로 가는 원년이 될 것이다. 용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을 알기에 필자는 오늘도 새벽길을 나선다.

2013년 1월 11일 시정신문 단체장칼럼

22
도전과 개척의 역사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도시 용산
2012-12-17

도전과 개척의 역사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도시 용산

용산은 과거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지역을 선점하기 위한 세력의 쟁탈전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 용산(龍山)이라는 지명도 백제 초기 한강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나면서 붙여진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용산은 위치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런 지리적 가치로 인해 근대사를 겪으며 일제로부터 군사·철도기지로 이용당하는 아픔을 겪고 해방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용산은 어떠한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도시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으로 과거 선조들이 생각한 중요성만큼이나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무장, 대한민국을 대표할 도시로 영글어 가고 있다.

도전의 연속, 구민을 위한 변화의 바람
민선 2기 구청장 시절, 필자는 지방정부에서는 처음으로 미군을 상대로 토지를 돌려받는 성과를 이뤄냈다. ‘아리랑택시부지’로 알려진 이곳은 당시 미군이 우리나라 땅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맞서 협상을 개시, SOFA 협정 의제로 끌어올려 되찾았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런 노력으로 한 푼의 빚도 없이 지난 2010년, 현 청사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시설을 한 곳으로 집중, 구민에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2010년, 민선 5기가 출범한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 미군 부대와 다른 공공기관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 재산을 반환토록 조치, 구민의 재산으로 귀속시켰다. 또한 용산 전 지역에서 진행되는 각종 개발 사업에서 창출되는 이익을 구민을 위한 각종 문화·편의시설로 탈바꿈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소 ‘사람은 바뀌어도 정책은 계속돼야한다’는 구정 철학에 따라 용산의 미래를 위한 중장기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2030년까지의 로드맵을 준비하여 지역의 역할과 특색에 맞는 발전방안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현재 용산은 80%이상이 재개발 지역일 정도로 이와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한남뉴타운 등 굵직한 개발 사업에 있어 조합설립, 사업승인이 큰 마찰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재개발과 관련된 전담 팀을 꾸려 갈등조정에 앞장서는 등 주민과 함께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다.

구민과 끊임없이 소통, 이웃과 함께하는 용산
필자가 민선 5기 출범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통’이다.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지정, 집무실을 개방하여 주민을 맞이했다.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생존과 직결된 사안까지 꼼꼼히 체크, 구민에게 다가갔다. 2012년에 접어들어서는 직접 주민을 찾아가 동별 현안을 점검하고 구민과 소통하는 ‘동 현안 소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6개월 간 5,000여명의 주민을 만났고 600건에 가까운 건의사항을 접수, 개선하고 있다. 내년에는 확대 운영하여 더 많은 주민을 만나고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용산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단체가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고 있다. ‘은빛봉사단’과 ‘교동협의회’가 그 주인공이다. 외부의 봉사단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주민이 직접 나서 어르신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367명의 은빛봉사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 103개의 교회가 합심하여 종교적인 믿음 아래 지역사회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

강북의 교육특구, 용산
필자는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다. 능수능란한 외국어 실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 용산에 살고 있는 아이들만큼은 2개 이상의 외국어를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원어민교실을 통해 영어,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심지어는 아랍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100억 장학기금’을 조성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돕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용산의 모습을 그리며 미래를 짊어 질 우리 아이들을 위한 예산은 단 1원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다.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발돋움
용산은 과거 전자상가 호객꾼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었다. ‘용산참사’ 같은 깊은 상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용산은 문화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2천만명이 넘게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의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한글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다. 삼각지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넘쳐나는 방문객과 각종 문화공연으로 용산을 널리 알리고 있다. 용산 역사박물관 건립 등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유지·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경복궁에 있는 민속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머지않아 용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물관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용산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이태원이 있다. 매년 180만명의 외국인이 찾을 만큼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관광명소다. 가수 UV가 부른 ‘이태원프리덤’에서 보듯이 세계가 있고 사랑과 자유가 넘치는 로맨틱한 곳이다. 이제는 내국인들까지 패션, 음식 등 전 세계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 위해 속속 모여들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이태원지구촌축제’를 통해 세계인이 열광하는 곳이 바로 이태원이다.

지난 18일은 제19회 ‘용산구민의 날’ 기념식이 있었다. 2,000여명의 주민을 모신 자리에서 필자는 ‘미래도시 용산’ 브랜드를 선포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미국의 센트럴파크를 능가할 민족공원이 조성되고 서울 최고 명당이라는 한남 뉴타운개발 등 다가오는 미래가 궁금한 도시 용산. ‘미래도시’라는 한 단어 속에 용산의 비전과 염원이 전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용산의 구청장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에게는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과 이웃을 가족같이 여기는 지혜로운 30만 구민이 있다. 구민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1,300명의 인재들 또한 용산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주민 모두가 행복한 용산. 다가오는 미래는 용산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12년 11월 서울의정회보 특별기고

21
문화(文化)의 힘,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용산스타일’
2012-09-14

문화(文化)의 힘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용산스타일’

요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웃음을 자아내는 표정과 경쾌한 리듬, 따라 하기 쉬운 춤 등 많은 오락요소와 더불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는 공화당 대선후보에게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면 젊은 유권자에게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 추천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B급 문화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쾌락을 느끼게 하는 탈출구”라며 평가절하 하는 시각이 있지만 하나의 문화코드로 유행의 선두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강남스타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이미 한국음악은 'K-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 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한류(韓流)를 통해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궁금해 하는 분위기가 지구촌 곳곳에 퍼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와 나라의 격(格)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노래가 한국을 알리고 한국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가 곧 국력이다
문화(文化)는 한 나라의 경쟁력과 국민의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동력이다. 역사적으로 흥망성쇠가 반복됐지만 한 나라의 국력이 높았던 시기와 문화가 부흥했던 시기가 놀랍도록 일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진부한 격언은 차치하고라도 문화가 융성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용산은 ‘문화도시’
필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구정 정책에 있어 지역문화 발전을 역점사업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 구의원으로 활동 하던 시절, 구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용산문화원’ 설립을 주도 했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97년 개원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구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 민선 5기에 접어들어서는 보폭을 더욱 확대하여 ‘용산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고 경복궁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용산으로 유치하고자 힘쓰고 있다. 과거 용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문화재 복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용산은 감히 ‘문화의 도시’라 자부할 수 있는 여러 이유가 있다. 최근 방문객 2천만명을 돌파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한(韓)민족의 유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바로 옆에는 한글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락 음악’의 역사가 용산에서 시작됐다면 믿겠는가? 이게 끝이 아니다. 용산에는 세계인이 모여드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전 세계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내·외국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며 화합하는 국제적인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축제에 직접 와보면 용산의 진정한 ‘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힘, ‘용산 스타일’
용산은 많은 아픔도 갖고 있다. 멀리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해서 여러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고 지금의 미군부대가 용산에 있다. 최근에는 용산참사가 벌어지는 등 수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용산은 변하고 있다. 최근 언론이 집중조명하고 있는 이태원만 봐도 알 수 있다. 십년 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필자가 구청장 직을 다시 맡아 취임했던 2년 전과 비교해도 블루스퀘어 공연장 등 현대적인 각종 문화시설 등이 들어서고 외국인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거리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것이 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용산은 이 문화의 힘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인이 용산을 찾아오고 ‘용산스타일’을 외치게 될 그 날이 머지않다.

2012년 9월 13일 시정신문 기고

20
기다리는 행정에서 찾아가는 행정으로
2012-08-08

기다리는 행정에서 찾아가는 행정으로


마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보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모를 찾아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지 이야기만 했는데도, 모모를 만나고 온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만족을 얻고 돌아간다.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모모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었거나 인생의 경험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누가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든 주의 깊게 잘 들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경청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걱정거리가 많을 때, 누군가 자기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큰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은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나는 구청장에 취임하면서부터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정했다. 이 날만큼은 다른 일정은 잡지 않고 오로지 구청장실을 찾아오는 주민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햇수로 2년 가까이 진행하다보니, 이제 목요일마다 나를 찾아오는 민원인들의 수가 현격하게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지역 현안들이 모두 해소가 되었거나 용산구 관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민들을 만나겠다고 구청장실 문은 하루종일 열어놓았는데 손님도 없이 하루종일 비워놓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월부터 매주 목요일이면 구청과 집무실을 벗어나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있다. ‘구민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현장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고 싶었다. 현장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누다보면, 말로만 설명하기보다 구민들의 고민과 걱정들을 더욱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현장방문에서는 하루에 한 개동을 방문해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각 동별로 하루에 20곳 이상을 방문하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구청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에 동행하는 수행 직원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루종일 일정이 이어지다보니, 체력적으로는 지치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구민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는 매순간마다 다시 힘이 솟구쳤다. 정해진 일정이 아니라도, 지나가던 길에서 만난 주민들 몇몇이 다가와 이런저런 하소연을 시작하면, 그것이 예정에도 없던 또 다른 소통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만남의 현장이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지역 현안 문제를 따지고 들던 사람들,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나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었다. 아니 때로는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는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물며 구정에 대한 이야기를 구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만큼 뜻깊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자리를 통해서 구정에 대한 구민들의 신뢰가 싹트고 더욱 깊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구민들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경청하고, 법적으로 또는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진리 속에 모든 해답이 있었다. 찾아가는 소통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였다.

‘찾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

현재까지 총 9개 동에 대한 ‘동 현안 현장 소통’을 마쳤다. 지금은 여름 휴가기간이라 잠시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이달 말부터 용문동을 시작으로 남은 7개 동을 찾아가는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4년 반환점을 돈 지금, ‘동 현안 현장 소통’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만나고 싶다.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 너무도 생생하고, 구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매 순간 순간이 너무도 즐겁다. 나와 함께 기꺼이 대화를 나누어주는 구민들이 있어 나는 참으로 행복한 구청장이다.

2012년 8월 7일 내일신문 기고

19
민원... 답은 소통이다
2012-04-04

民願... 답은 소통이다


내가 구청장에 취임하면서부터 구민들과 지키고 있는 중요한 약속이 하나 있다. 바로 매주 목요일을 ‘구민과의 대화’의 날로 정하고 구민들을 직접 만나기로 한 약속이다. 이 날만큼은 다른 일정은 잡지 않고 오로지 구청장실을 찾아오는 주민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러한 구민과의 만남은 나에게 기대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오늘은 어떤 분들이 나를 만나러 오실까 설레면서도, 힘들게 찾아오신 구민들에게 법의 테두리내에서 해결해드릴 수 없는 일이거나 혹은 내 권한 밖의 업무라서 원하는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 구민들도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괜찮다며 손까지 꼭 잡아주시는 분도 계신다.

그렇게 지난 1년 6개월 동안 382개팀 942명의 구민이 구청장실을 찾아왔다. 단순한 민원이나 하소연에서부터 재개발·재건축 또는 당장의 주거 문제 등 민원의 내용들도 다양했다. 한 가지도 소홀함이 없이, 구민 한 분 한 분께는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들이었다.


구민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다
내가 민선 2기 용산구청장으로 재임하던 1998년 도원동 재개발 현장에서도 재개발 문제와 관련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또한, 용역업체와의 다툼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철거민들은 매일같이 구청을 찾아와 시위를 벌였고 아예 천막을 치고 구청 앞에 살기에 이르렀다.
매일같이 장송곡에 각종 운동권 노래를 틀어놓고 꽹과리를 쳐가며 집회를 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고, 천막을 철거하면 다시 설치하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천막 근처에 개인 속옷을 널어놓아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천막 주변의 전기를 불법적으로 끌어다써서 화재 위험까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철거민들이 추운 겨울에는 천막에서 얼어죽지는 않은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늘 챙겨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욕설뿐이었다.
시멘트 바닥위에 자다가 동상이 걸리거나 하면 ‘인정머리 없는 구청장, 피도 눈물도 없는 구청’이라고 우리를 원망하고, 혹시라도 화재가 나면 불법을 눈감아준 구청이 되니 참으로 난감했다.
이에 직접 나서 철거민 5세대를 하나하나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방안을 찾았다. 결국, 물리적인 방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도원동 재개발 관련 민원은 취임한지 1년만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구청 앞에는 관내 재개발구역에 거주했던 한 철거민의 농성이 3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재개발구역 지정 이후에 지역에 거주를 시작해 임대주택을 제공받을 수 없었던 철거민은 2008년부터 구청 앞에서 간이천막을 치고 시위를 시작했다고 했다.

철거민은 구청앞 대로변에서 민중가요를 틀고 매일같이 농성을 진행하였고, 구청앞 천막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거리에서 지내다보니 얼굴에는 힘들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단점거된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여 거리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기적으로 이어진 구청과 철거민간의 심각한 대치 상황으로 주변 주민들에게 불안감이 조성되었고, 계속되는 농성으로 주민들의 항의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미 내가 취임하기 전까지 서로간에 명예훼손, 모욕죄, 업무 방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고소, 고발이 지속되어 갈등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기초생활수급권자에 살 곳도 없이 농성만 하고 있는 구민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먼저 철거민에게 법적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이해시켰다. 그리고 직접 여러 기관들과 접촉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 결과 다행히 서울시 및 SH 공사에 긴급 주거 지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3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농성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서로의 양보로 이끌어낸 건물 복구

2010년 9월, 폭우로 용산2가동 군인아파트 옹벽이 붕괴하여 한 주민의 건물을 덮쳐 집이 파손된 일이 있었다. 졸지에 한 구민의 삶터가 부서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군인아파트 관리기관인 수방사와 구민간에는 합의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서로간의 입장차만 확인했고 시간만 계속해서 흘러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부딪혀봤자 해결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구민분은 답답한 마음에 지난 2011년 3월, 나를 찾아오셨다.

구청에서는 민원 해결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고 수방사와 피해 주민이 주장하는 내용을 사안별로 면밀히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원인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하여 수방사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5차례의 공식 회합과 전화, 방문 등 총 270여회에 걸친 접촉에 힘입어 결국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옹벽 복구 및 주택재건축을 거쳐 자신의 집에 무사히 입주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집으로 입주하던 날,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던 노부부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민원 서비스 수범 사례로 선정되어 서울시 민원MVP를 수상하였다. 구민들을 위한 작은 노력이 구민에게는 새로운 힘을 주었고, 또 대외적으로 인정받아 서울시 민원 해결 수범 사례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존중하고 섬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해결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구청 행정에 있어서 소통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는 행정에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행정 서비스를 펼쳐 나간다면, 구민들의 공감과 함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민과의 소통’이 구정 운영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구민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기울이고, 구민들의 희망이나 바람들이 무엇인지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경청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구정의 가장 큰 원칙을 “소통”으로 삼고, 구민 모두를 주인으로 하는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다. 그래서 구정을 이끌어가는데도, 갈등이 깊은 민원 문제 해결도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이것이 우리 용산을 더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곳으로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되리라고 믿는다.


2012년 4월
용산구청장 성장현

18
용산 땅찾기는 아직도 계속된다
2012-04-03

용산 땅찾기는 아직도 계속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힘, 도전과 열정

눈부신 햇살이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이태원로 가득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 용산구 청사가 들어서있는 땅은 예전에 아리랑택시부지가 있던 곳이다. 청사 9층에 들어서있는 구청장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10여년도 훨씬 지난 그 시절의 생각에 마음이 뭉클하다. 이 땅을 미군으로부터 돌려받기 위해 남들은 무모하다며 한사코 말렸던 도전을 시작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 자리에 이렇게 서있기 때문이다.

원래 아리랑택시부지는 미군이 우리 정부로부터 군사 목적으로 제공받은 땅이었다. 그런데 이를 미군이 국내의 한 택시업자에게 다시 빌려주고 수익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군사부지이니만큼 마땅히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곳은 우리 용산의 한복판이자, 관광객들의 왕래도 많은 이태원관광특구의 초입에 있지 않은가.
나의 이런 생각에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미군을 상대로, 그것도 나라가 아닌 작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땅찾기에 나서다니, 지금도 그러하지만 10여년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해야겠다, 아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어 50개주로 구성된 “미합중국”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에 비하면 너무도 역할이 미미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각 주에서의 주지사가 대통령만큼이나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다. 우리로 말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을 그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미국의 정서를 감안할 때 구청장이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 8군 사령관과 마주 앉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미 8군 사령관에게 “부산에 유엔군 묘지에 한 번 가보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내가 그 곳을 왜 가봐야하냐”며 반문하던 사령관에게 나는 부산 유엔군 묘지의 비취 목걸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산에 있는 UN군 묘지의 한 비석에는 파란 비취색 목걸이가 걸려 있습니다. 비가오면 비에 젖고 눈이오면 눈에 덮혀 비바람 찬이슬에 반짝이는 목걸이 하나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 목걸이는 6.25 괴뢰동란에 적탄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3.8선 어느 이름모를 골짜기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한 흑인 병사의 비석에 걸린 목걸이로 흑인병사의 어머니는 자식이 너무나도 보고팠던 나머지 이역만리 미국에서 내땅 한국을 찾아와 부산 UN군 묘지 187번 “지엠바비”라고 씌어진 아들의 비석을 부둥켜 안고, “아가! 얼마나 외로웠느냐..? 여기 애미가 주는 훈장을 받아라”하며 남편에게 받았던 결혼 목걸이를 아들의 비석위에 걸어주고 차마 돌아설 수 없는 발길을 돌이키며, 내사랑하는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빛 코리아에 잠들어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김포공항을 떠나갔다고 한다.

목걸이와 관련된 사연을 들려주면서,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이야기를 듣던 미 8군 사령관도 잠시 말을 잃고 상념에 빠져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며,
“당신의 선배들은 우리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을 때 우리나라를 찾아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렇게 목숨까지 내어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은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한없이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지 50년, 이제는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을 겪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변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가 지금은 민주화다 인권이다 해서 이슈가 다른데 있기 망정이지,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 국민의 정서가 반미로 돌아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문제는 지금 우리가 풀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일본은 전범국가이고 패전국가인데 우리는 맹방이고 우방이지 않는가. 최소한 대한정책이 일본보다 훨씬 좋지는 못해도 최소한 일본만큼이라도 돼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진심을 담은 설득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미 8군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물론 그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당시 이 사실을 알게 된 많은 언론에서는 나의 이런 도전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리고 우리 용산구가 해냈다. 결국 이 일은 SOFA의 의제가 되었고, 협상을 통해 지방 정부가 헌정 사상 최초로 미군을 상대로 땅을 돌려받게 된 사례가 되었다. 그 때의 “불가능한 도전”이 지금의 성과를 거두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후임청장이 마무리 짓고 구청 청사를 지어 지금은 내가 집무를 하고 있다. 아마 그 때 미 8군 사령관에 대한 나의 담판이 없었다면, 지금 이 땅에 용산구청이 들어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재산보다 더 중요한 용산구의 “재산”

개인에게도 재산은 중요하다. 하물며 지방자치단체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구민의 재산이며,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발전해가는 소중한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리 용산구가 가진 구유재산이 얼마나 귀한 자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문배특별계획 1구역내에 있었던 용산구의 땅 원효로1가 57-17외 2필지 1,449.5㎡이다.
사업자에게는 이 지역의 개발 사업 추진을 위해서 구역내에 위치하고 있던 용산구의 땅을 사들여야 했다. 구의 입장에서도 개발 구역내에 위치한 이 땅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땅은 지난 2010년 7월, 사업자에게 150여억원에 매각되었다. 우리 구 명의로 되어 있던 땅이 용산구에게는 실로 큰 자산을 만들어주게 된 셈이다.

또 하나, 국방부 소유의 동빙고 어린이집 부지(동빙고동 7-40외 1필지)와 육군 중앙경리단이 점유중인 우리 구 소유 토지(이태원동 295-1외 8필지)를 교환했던 일도 있었다.
지방자치단체가 국방부를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고 나서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10년도 훨씬 전에, 미 8군을 상대로 땅을 되돌려달라고도 겁 없이 나섰는데, 국방부라고 못할까, 싶었다. 끈질긴 협상과 노력의 결과, 2008년부터 지지부진하게 끌어왔던 토지 교환 문제는 2011년 9월이 되어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동빙고 어린이집 부지의 토지의 소유권을 용산구로 이전시킬 수 있었고, 교환 차액 대금 47억원을 우리 구 공유재산관리기금에 적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땅의 정리, 관리가 기본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한 후 우리 직원들에게 우리 구의 재산은 되도록 매각하지 않도록 부탁했다. 예전에 누군가 용산구의 명의로 사두었던 땅이 지금 용산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또 남겨주는 재산이 후대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용산의 땅의 위치와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결실을 이루어 용산구의 구유 재산을 전수 조사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구청, 주민센터, 복지관, 어린이집 등 공공건물은 재산명, 소재지, 면적, 공시지가, 시가 등을 표시하였고, 임야, 주차장, 도로, 공원 등 구 소유토지도 동별로 필지수, 면적 등을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서 땅이 용도에 맞게 잘 쓰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쓰여져야할지 우리 구유재산의 모든 것이 하나로 정리되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를 기반으로 하여 구에서도 재산 관리에 철저를 기할 것이며, 땅에 관한 행정 및 정책 목적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어 향후 용산의 구유재산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땅찾기는 계속된다

이제 나는 USO(캠프킴)부지를 30만 우리 용산구민의 땅으로 되찾으려고 한다. 이는 지난 100여년간 국가안보를 위해 용산구의 소중한 땅을 내어주고 외국 주둔군의 각종 범죄와 기지 주변 환경 오염, 생활권의 분리로 인한 도시의 균형 발전 저해 등 막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부담해온 우리 용산구 주민에 대한 국가적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우리 구민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을 되돌려 받는다면, 이제 이 부지에 종합행정타운을 만들 계획이다. 구청을 비롯해 경찰서, 세무서, 우체국, 등기소 등 관내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공공기관을 한 곳으로 모으고, 기타 행정, 문화, 외국 기업 지원 시설을 유치하여 공공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는 향후 미8군 이전이후 복합시설지구의 난개발을 막을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군이 주둔하였던 곳에 용산구의 복합행정타운을 조성함으로써 진정한 반환의 의미를 되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구청을 비롯해 경찰서, 세무서, 우체국, 등기소 등 행정기관들이 용산구로 반환하기 위한 TF팀을 만들어 관계기관에 이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또, 현재 미 8군안에 있는 땅 15,597㎡ 도 우리 용산구가 주인임을 밝히고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칠 것이다. 그동안은 군사 목적으로 사용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향후, 미 8군이 이전하고 용산공원이 조성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재 미 8군 부지와 수송부, 유엔사 등에 흩어져 있는 용산구 부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재판을 통해서라도 되찾아올 생각이다.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용산구의 재산을 찾기 위한 노력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가능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 일이라고 비웃어도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용산구청장 성장현

17
유기 송아지, 용산에서 ‘새 삶’ 찾다
2012-04-03

유기 송아지, 용산에서 ‘새 삶’ 찾다


유기(遺棄) 송아지

임진년 설을 앞둔 지난 1월 19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찰나 한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청장님, 송아지를 누가 우리 관할 구역에 버리고 갔습니다. 저희가 일단 보호를 하고, 주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자초지종은 묻지도 못하고, 송아지를 잘 보호해달라는 당부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는 잘 있었습니까?" 설을 앞두고 처리해야 할 많은 일 때문에 바빴음에도 송아지 생각이 가장 먼저 났었던 것은 아마도 농촌에서 자란 내 어린시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소와 함께한 추억

농사꾼의 아들로 시골에서 자란 나도 그 시절 모두가 그러하듯 소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봄이 되어 들판이 파릇파릇해지면 소 먹이러 산으로 들판으로 나가 풀밭을 뒹굴며 책도 읽고, 심심해지면 동무들과 소싸움을 즐기다가 아리조나 카우보이처럼 소의 등을 타고 놀기도 하였다. 또한, 자나 깨나 소 꼴 베고 풀 뜯기며 소 키우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아직도 기르던 소가 송아지를 낳던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 갔다 왔더니 대문엔 금줄이 쳐져 있었다. 책보도 벗지 않고 외양간으로 갔더니 어머니는 작은 소반에 정한 수 한 그릇을 떠와서 빌고 있었고, 어미 소는 계속 혀로 송아지를 핥고 있었다. 붉은 털빛에 속뼈까지 보일 것 같은 여리기만 한 송아지였다. 내가 손을 내밀자 무섭지도 않은지 내 손을 핥았는데 혀는 따뜻했지만 약간 거칠고 뻣뻣했다.
해마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면 어미젖을 땐 송아지를 팔기위해 어른들 간 흥정이 시작되곤 하였다. 정들여 키운 송아지가 팔려서 어미 곁을 떠나던 날이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절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같이 울곤 했었다.


용산에 온 송아지, 건강 되찾아

송아지를 담당했던 직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송아지의 처지가 너무나 딱했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 속에 서울의 낯선 거리에 홀로 남겨진 송아지는 시급히 응급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금방 죽을 정도로 허약한 상태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는 짐승은 내쫒는 법이 아니라 했는데 아무리 궁리해도 키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한강로동 한마음공원에 임시거처(외양간)를 만들고 영양주사와 구제역 주사를 투여한 다음, 물과 사료를 주고 정성껏 돌보다가 기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양주 휴양소 넓은 텃밭에서 기르면 어떨까 생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직원들이 구정연휴도 반납하고 최선을 다해 보살핀 결과 건강을 되찾았고 지금은 양주 휴양소에서 잘 자라고 있다. 때마침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송아지를 찾아가겠다고 나서 지금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삶 경작하는 농민의 마음이어야

연일 매스컴에서는 소 값 폭락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료 값은 오르는데, 소 값은 떨어지면서 빚더미에 오른 축산농가에서 굶어 죽는 소가 속출하고, 아예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의 사연과 폭락한 송아지 가격에 대한 소식이 심상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한때 농민의 제일가는 자산이던 소의 가치가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는지 그로 인해 우리 농촌의 현실이 얼마나 초라하게 변하고 있는지 농민의 긴 한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정부의 농업 정책은 생산자에게는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고 소비자는 믿을 만한 곳에서 농산물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게 하는 유통구조로 개선되어야 한다. 자국의 1차 산업이 망해가는 위기에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 약자의 최저 임금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국가를 경영하는 백년대계의 농사와 같다면 정치인이란 국민의 삶을 경작하는 농부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강산에서 나고 자라는 신토불이 농축산물을 힘겹게 지켜가고 있는 농민들의 아픔과 눈물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정치인들의 적극적 노력과 정부의 근본적 대책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하지 않나 싶다.

깊은 시름에 빠진 농민들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되찾고 우리 구에 버려졌던 송아지가 다시 온전히 시골 풀밭에서 농부의 손으로 예쁘게 키워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빈다. 나 또한, 우직한 소처럼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2012년 2월 8일 시대일보 기고

16
격랑의 한반도, 위기를 넘어 민족화합의 장으로...
2012-04-0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그리고 한반도.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중략)

2011년 12월 19일 이후 북한 국영 조선중앙 TV의 간판 아나운서 이춘희(68)씨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흐느끼는 모습이 연일 방송매체에서 방영되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제185회 용산구의회 제2차 정례회가 폐회되고 의회가 주최한 송년간담회장에서였습니다.

그 후 종일토록 어린 시절 거리마다 나붙었던 반공포스터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모습,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 이후 펼쳐지게 될 한반도의 불확실한 미래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떠돌면서 잘 정리가 되질 않았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통일조국의 일꾼이 되고자 동국대 행정대학원 북한학과에 진학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해 왔기에 나에게 있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그 만큼 충격적이고, 파장이 큰 사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은 진정되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 끝에는 또 다른 희망의 싹이 떠오름을 알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감회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억은 대략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공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하나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 겨레의 화합과 평화, 남북공동 번영의 가능성을 심어준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으로 그동안 단절되어 있던 철도․도로 연결사업,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쪽이 제안한 실질적인 남북교류와 협력 사업에 적극 호응하였던 북녘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일 것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어기며 강행한 핵실험과 서해에서 벌어진 국지적 도발에 이르기까지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적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다시금 군사적 대치와 냉전으로의 회귀를 감행한 위험한 독재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의 절대 권력자로서 이러한 상반된 모습을 보였던 그가,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북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북한의 새로운 정권탄생을 지켜봐야 하며, 이는 곧 남북 간 새로운 관계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고 남북 간 군사적 대립을 야기한 1차적 책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비해 새롭게 출발하는 김정은 정권은 조금 더 유연한 입장에서 국제사회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의 강대국들이 앞 다투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인정하고 있고, 북한의 변화된 정치여건을 적극 이용하기 위한 대응방안들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한 우리 정부의 대응자세는 답답함을 느낄 만큼 거북이 행보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양측 모두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이용하기 보다는 7천만 남북한 주민들이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번영과 복리증진이라는 철저히 실용적인 입장에서 절대적인 평화보장과 안정, 그리고 화합을 통한 민족공동번영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민족이 가진 모든 지혜와 역량을 총 결집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길게는 20년 이상을 내다보며, 여러 가지 우리에게 닥쳐올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 상황별로 대책을 세워 흔들리지 않게 추진해야만 합니다.

더불어 지금당장 우리가 시급히 추진하여야 할 과제는 기아와 굶주림에 고통 받는 2300만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인도적 대북정책의 실행입니다. 김정일 사망이 우리에게 위기인지 기회인지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도랑을 파야 물이 흐르듯 우선은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고 최소한 민간차원의 경제·문화 교류·협력 금지를 해제해 꽉 막힌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 상태를 타개하고 한반도의 굳건한 평화안정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한발씩 진전을 보이던 남북정상회담은 회담의 한쪽 당사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어린 김정은이 후계수업을 체 마치기도 전에 권력을 승계하게 되는 급박하고도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성사여부가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외교적 고립과 최악의 식량위기 속에서 사활적으로 3대 세습과정에 매달리고 있는 통치경험이 전무한 20대의 김정은을 70대의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 민족이 처한 현실과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토론하고 실천적 결단을 감행하기엔 북한의 처한 현실과 어린 후계자의 연륜이 아쉽기만 합니다.
비록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낮게 전망되지만 단순히 오늘과 같은 불안한 평화가 내일에도 반복되는 불완전한 공존이 아니라 평화공존 속에서 경작되는 공동번영의 풍성한 과실을 7천만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실용적인 방안 등을 논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불씨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는 정치적 리더십과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는 리더십을 기대하며...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 세계 경제를 엄습한 금융위기 속에서 세계경제의 바퀴를 멈추지 않고 움직인 그 원동력은 동아시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 단언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우리 한반도가 있습니다.

한반도는 지리학적으로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입니다. 또, 남북이 평화적으로 협력해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철도와 도로를 연결한다면, 이는 중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유럽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실크로드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설치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도입과 같은 프로젝트들은 우리 한반도가 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밖에도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우리의 발달된 IT기술, 수준 높은 노동력과의 시너지 효과 등은 지난날 우리민족이 누려보지 못했던 경제적 번영을 보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협력은 끊어진 이산가족의 끈을 잇고, 자유로운 왕래를 열고,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어 남과 북의 끊어진 허리를 메울 것입니다.

김정은이라는 29세(북한이 주장하는 나이)의 새로운 북한지도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달리 유럽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선진 문물에 일찍이 눈을 뜬 젊은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지도자에게는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이 그대로 전달되고, 우리 민족 공영의 커다란 밑그림이 확연하게 그려져서 진지하게 우리 민족번영의 큰 길에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을 희망합니다.

또한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고, 국제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할 것입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에는 15만 중국군이 주둔해 있습니다. 이는 언제든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이고,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때문에 이제 우리는 종북이냐, 좌파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1995년 국내산 쌀 15만 톤을 무상 지원한 이후 2007년까지 약 1조 976억원에 상당한 쌀 265만톤, 옥수수 20만톤의 천문학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를 다시 한 번 고려해 밝아오는 용의 해에는 용의 기상에 걸맞게 대범한 포용력으로 우리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의 돛단배를 절대로 얼지 않을 민족의 강물 위에 띄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민족이 함께 웅비할 수 있는 길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뼈를 깎는 아픔과 인내, 용서와 화해의 한결같은 포용력으로 참고 기다릴 때 비로소 저들도 우리의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옷깃을 여미고 잃어버린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는 아비의 기도하는 심정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반드시,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며, 오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12월
용산구청장 성장현

15
한·미 FTA 비준동의안 국회 처리를 바라보며...
2012-04-03

통상주권 날치기 당했다
초유의 ‘최루탄 국회’... 정치는 없었다
‘미국 경제체제’ 날치기로 도입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다음날 아침
출근길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는 주요 일간신문의 1면 머릿기사입니다
언론사의 논조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각만 다를 뿐 FTA 비준동의안 처리 결과에 대해 대단히 무겁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사 제목만큼이나 제 마음도 무언가에 짓눌려 오는 것만 같습니다.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집무실 창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용산 미8군 영내에는
오늘도 분주히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통행합니다.
저들은 지금 한국 사람들의 복잡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용산구 지방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수장으로서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어봅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FTA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것도 최단시일내에 처리해야 한다고요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때 부터 시작했던 일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난 정부때의 원안이 아닌 불리한 현재의 협상안은
몇몇 대기업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수많은 농·어·축산민을 비롯한
서민들에게는 끝없는 고통만 안겨줄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주장합니다
FTA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하며 다만,
여러 가지 독소조항을 재협상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참으로 애국적인 생각이고 발언일 것입니다

마음 아픈 것은 FTA 처리에 대한 국민여론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분분한데도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상식을 벗어나
그렇게도 졸속으로 날치기 처리해야 했는지?
또한 협상안에 대해서 얼마만큼 고뇌하고 깊이있게 실질적인 노력을 했는지?
국회와 정부의 태도가 많이 가슴 아프게 합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벌써 5번째로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무엇입니까?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고 지혜를 모아
국리민복을 위해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입법기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FTA 처리는 미국과의 협상시한을 들어
쫓기듯이 날치기 처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협상안 날치기 처리도 그렇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의 시각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다고 일부언론에서는 지적합니다
미국 의회는 철저한 경제논리로 무장한 반면에 우리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한·미 FTA를 순수한 경제논리가 아닌 안보논리와 뒤섞어서
수많은 조항에서 국민의 이해관계를 외면하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김진호 국제부장은 칼럼에서
『 맹목적 FTA 지지론자들이 그토록 닮고 베끼고 ‘경제합방’을 하고 싶어했던
선진 경제 시스템 역시 실패했다. 월가의 돈놀이에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미국 시스템은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암운을 던지고 있다.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미국경제,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지켜보며 FTA 비준을 다뤄도 나쁠 것이 없었다.
미국 의회는 4년반을 끌었는데, 우리는 왜 1년도 끌지 못하는가』
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지금 총성없는 경제전쟁터 입니다
어떻게든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는 다른나라의 유·불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비준안을 처리하고 왜 시급히 협상을 맺을 것을 요구했을까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야당이나 국민들의 주장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형식적인 타협안만을 제시하고는 날치기로 처리하는 것은
다수당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당의 대응도 안타깝습니다.
미국에게 그리고 집권 여당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야당으로서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국론을 모으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여당을 설득하고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다시 만들어
미국과 재협상이 이루어지도록 정치력을 발휘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표결에 응해야 했으며 그 결과에 따랐어야 옳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하고 힘으로 막겠다고 나섰다가
정작 아무것도 못하고 날치기 당하고 말았다는 것은
그 과정이나 결과로써 야당도 여당 못지않은 책임을 져야하며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이제 겨울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갑니다
달동네 서민들의 가정에는 따뜻한 온정이 모여 연탄으로 배달되고 있는 계절입니다
이 추운 겨울날에 서민들의 가슴에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처리 소식이 더 큰 아픔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또한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지방행정의 수장으로서
여러 가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나와 뜻이 다르다고 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견이나 주장이 다른 사람들,
다른 정당들과 조화롭게 상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을 때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겠다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습니다.
오늘 아침 이런 교훈을 되새기면서 다시금 구정을 시작합니다.

2011. 11
용산구청장 성장현

14
태산공덕 불여일청렴
2012-04-03

태산공덕불여일청렴(泰山功德不如一淸廉)”


공무원 생활의 제1원칙, ‘청렴’

나의 집무실에는 “태산공덕불여일청렴(泰山功德不如一淸廉)”이라는 좌우명이 담긴 액자가 있다. ‘태산같이 공덕을 쌓아도 한 가지 청렴한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 글은 20대 후반, 정치에 막 입문하던 시기에 열암 송정희(列菴 宋正熙)선생께서 써주셨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청렴해야 한다’는 뜻을 가진 이 좌우명을 나는 30년째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의 훌륭한 성과물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얼마나 깨끗한 청렴정신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평소 나의 신념이다.
이 글귀가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나는 내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결코 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해왔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시민들의 불편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개선하는데 최일선에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청렴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돼야 할 덕목으로 공직자의 기본 도리이자 구민과의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이를 기반으로 구정을 펼쳐나갈 생각이다.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어야하는 이유

정치는 언제나 양면성을 갖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심산 유곡에 핀 한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흙탕물이지만 흙탕물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연꽃은 바로 그 흙탕물에서만 피어난다. 정치는 흙탕물에서 피어야 하는 연꽃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은 흙탕물 속에서도 피어나야만 하는 공무원의 청렴 의지와 공직의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시민들의 불편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개선하는데 최일선에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깨끗해야 한다. 직원들에 대한 일방적 교육이나 명문화된 규정에 의해 피동적으로 지켜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돼야 할 덕목이다.
우리 용산구에서는 청렴 공무원을 선발하여 상금, 해외연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청백 공무원상과 내부 비리 신고 센터인 감사담당관 핫라인 운영, 맞춤형 청렴 교육, 청렴 교육 사이버 과정 운영 등 청렴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 직원들이 마인드적으로 누구보다도 업무에서 청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이 이용하는 전자결재 사이트에서도 청렴 수기를 릴레이 형식으로 작성하는 청렴 릴레이 운동, 공무원 행동 강령 퀴즈, 청렴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게시하는 청렴 물결방 등 청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나 역시 우리 직원들의 청렴 의지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 메시지도 직접 보내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격려와 올바르고 청렴한 공직자가 되기를 당부하는 내용을 담아 매달 메시지를 보내면서 직원들과 청렴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도 나에게는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 구는 전 직원이 청렴 실천에 노력하고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비가 온 뒤, 땅은 더욱 단단해 진다

청렴없이는 위대한 조직도 없다. 사람들은 아무리 잘 해도 잠시의 실수만을 기억한다. 최근 공무원 사회에서 발생한 인사, 사회복지 등 관련 비리로 인해서 ‘아직도 공무원 사회가 부패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아직도 공무원에 대한 청탁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나는 ‘비가 온뒤 땅이 굳는다’는 말을 누구보다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청렴’하고 ‘진심’을 다하는 생활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 용산에서 청렴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나 역시 ‘태산공덕 불여일청렴'이라는 글귀가 내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있는 한,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2011년 11월 8일 내일신문 기고

13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시대
2012-04-03


나는 용산 곳곳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거리 곳곳, 골목 여기저기를 걸으면서 보고 듣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내가 소홀히 넘어갔던 부분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그런 부분들은 잊지 않고 메모해두곤 한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만나온 동료들과 후배들, 그 분들이 있어서 오늘 내가 용산구청장이라는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동안 도중에 수없이 포기도 하고 싶었고 넘어지면 아예 일어나지 않으려고 망설이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그동안 만났던 주민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성원을 반드시 보답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용산 곳곳을 다니면서 느끼게 된 주민들의 가장 큰 소망은 용산구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용산구민임이 뿌듯하게 느껴질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곳곳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우리 용산구는 곳곳이 참 아름답다. 사시사철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남산과 한강을 끼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효창공원, 이태원 관광특구 등 다른 구에서는 가지지 못한 뛰어난 문화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 용산만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부터 가장 세계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곳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 지역의 80%가 재개발되고 있으며, 미 8군 이전 문제 등 앞으로의 재발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민선 5기 용산구를 열면서 내가 꿈꾸게 된 용산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여기가 바로 용산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땅,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녀들이 미래의 꿈을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단 1분이라도 더 머물고 싶고, 1년이라도 더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다.

이제 나는 우리 용산을 서울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과 무한한 개발 잠재력을 토대로 명실상부한 세계화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고, 행정, 경제, 교육, 복지,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재도약을 통해서 용산을 살기좋고 경쟁력 있는 도시로 육성해나가고 싶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구에서는 주민 화합과 소통 행정으로 구정 역량을 강화하고, 구민의 의견을 중시하는 것을 구정 운영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 구민의 의견이 담긴 다양한 시책을 발굴하여 현장 중심 행정을 추진함으로써 구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투명하고 건전한 구정운영을 도모해나갈 것이다.

용산 지역의 80%가 재개발 재건축 지역이다. 주민이 주인되는 지역개발을 통하여 주민의 개발이익을 최대화하고 세입자가 소외받지 않는 균형있는 개발을 추진하며, 녹지환경과 전통 있는 지역경제 기반들이 함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나갈 것이다. 경제적 활력, 환경적 쾌적성을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균형개발 유도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의 교육열은 어느 곳보다 높다. 이러한 학부모님들의 교육열을 반영하여 세계화의 시점에서 용산의 밝은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주민이 호응할 수 있는 선진교육을 위한 환경 개발과 정착에 솔선수범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역간, 소득계층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행․재정의 적극적 지원으로 미래의 주역인 아동․청소년이 창의적으로 자기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건강하고 유능한 미래전문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시대에 부응하는 인재 육성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저소득층․노인․장애인․아동․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소외받지 않는 수혜자 중심의 평생복지 실현을 위해 기업체, 사회단체 등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통한 복지 재정을 확보해나가고 자원봉사활동, 민간복지자원 발굴 등으로 모든 구민이 행복해 하는 더불어 사는 복지공동체를 건설해나갈 것이다.

우리 지역에만 있는 개성있는 문화 자산들을 서로 연계하여 구민의 다양한 문화욕구 충족을 위한 초현대적 문화시설과 가장 한국적인 즐거움을 제공하여 국제적인 문화관광 메카로 육성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양적․질적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로 고품격 선진문화를 창조해나갈 것이다.

구민과의 약속, 앞으로 추진해야할 구정 목표 실천을 위해서 우선 나부터 주민을 섬기는 구청장, 모든 분들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겸허한 자세로 일하는 구청장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 잡을 것이다.
지금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구청장이나 구청 때문에 힘들고 가슴 아픈 주민들이 없도록 항상 몸을 낮추고 구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구민들과 함께 한 약속이니만큼 4년뒤 ‘정말 잘 뽑았다’는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2010년 9월호 서울의정회보 기고

12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힘
2012-04-03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힘


보잘 것 없는 꿈, 커다란 꿈,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는 꿈, 곧 실현될 듯한 꿈,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실현되지 않을 꿈…. 꿈은 그 내용도 실현 가능성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실현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꿈일지라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그것을 이루어보려고 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단지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삶이 가치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 자신의 꿈과 재능을 나누면서 사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누구나 따뜻한 정과 마음을 느끼는 지역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정이 서로에게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되는, 결과적으로 공적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자원봉사의 새로운 모범

이달 초 우리 지역에서 '은빛과 함께'라는 자원봉사단이 새롭게 출범했다. '은빛'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그대로 어르신과 함께 하는 봉사단이다. 한걸음 더 나가 세대와 계층을 넘어 노·장·청이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자원봉사단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위해 뜻을 모은 구성원들은 젊고 활기에 넘친다. 갓 스무살을 넘긴 학생부터 50대까지 장년층까지 모여 이웃에 대한 봉사를 고민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챙기기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고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지난 6월부터 동별로 모집을 시작해 현재 총 376명이 신청했다. 이번 자원봉사단이 좀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사람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동별로 자원봉사단 간담회를 시작으로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운영 과정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실습해보는 교육 기회도 가졌다. 어르신의 몸 상태와 생활을 직접 이해하기 위해 효창동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스스로 노인 체험을 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어르신들의 몸과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게 된 '은빛과 함께' 자원봉사단들은 '노인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드신지 알게 되었다'며 어르신들을 좀 더 많이 이해했다고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출범과 함께 '은빛과 함께' 자원봉사단은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에 시동을 걸고 있다. 동마다 활동 내용은 다양하다.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정을 나누고 구석구석 청소를 했던 봉사단이 있었던가 하면, 어르신들이 사는 곳을 방문해 안부를 전한 봉사단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참 이해'에서 출발

자원봉사는 사람에 대한 참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누군가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부터 나온다고, 그것이 진심으로 연결될 때 일회성·전시성 봉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진다고 말이다.

봉사를 통해 진정으로 마음을 모으고 돕겠다는 진심을 나누어야 한다. 단순히 누가 누구를 돕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고 이해하고 공감하면 봉사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누구나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자원봉사는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용산은 어르신들을 위한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면서 자원봉사에 대한 새로운 염원과 발전, 새로운 모범을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은빛과 함께'뿐만 아니라 다른 저소득계층이나 장애인 한부모가정과 '함께'하는 자원봉사가 더 늘고, 재능과 장점을 살린 봉사로 서로에게 품앗이할 수 있다면, 용산 전역이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지 않을까.


2011년 9월 29일자 내일신문 기고

11
이태원의 공기는 왜 자유로울까
2012-04-03

이태원, 그 자유와 특별함

'요즘 심심할 땐 뭐해 따분할 땐 뭐해 어디서 시간때우나 강남 너무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중략)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이태원 프리덤 다 알려주겠어 다 말해주겠어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음악이 있어 또 사랑도 있어 세계가 있어 나에게 말해줘'

개그맨 유세윤이 속한 힙합듀오 유브이(UV)의 '이태원 프리덤'이 화제다. 최근 이태원 풍속도와 새로움을 제대로 짚어낸 가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공간, 이태원을 예찬하고 있는 이 노래는 음원이 출시된 순간부터 핫이슈를 불러왔으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런데 이것이 잠시의 관심과 인기가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는 가수 알리와 고은이 알앤비 버전으로 이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등 아직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태원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강남 너무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라는 '이태원 프리덤'의 가사가 잘 설명하고 있다. 다른 어떤 곳에는 없는 특별한 것이 이태원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태원의 “특별함”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이태원으로 향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이태원은 외국인들에게 대표적인 쇼핑 관광 명소였다. 그만큼 한국 안에 있지만 가장 세계적이고, 연간 160만명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외국인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태원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들이고, 머리며 옷이며 스타일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제 이태원은 더 이상 외국인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이태원의 예술가, 이태원의 예술혼
이태원에 살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이태원에 집과 작업실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태원 주민들이다.
이들은 주민들이 버린 물건을 새롭게 가공해 주민들에게 전시·판매하고, 직접 재단한 양복을 판매하며, 주민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친다. 또한, 마을 곳곳에 핀 작은 풀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주민들을 찾아가 요리를 만들어주고, 집으로 주민들을 초대해 사진을 찍어주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이태원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펼쳐오고 있다. 그들은 이태원을 진정 사랑하고 또 이태원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다.
젊은 예술가인 그들이 이태원을 작업 공간이자 삶의 공간으로 선택한 것은 이태원이 새로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동네라는 점 때문이었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 또한 이태원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태원의 에너지, 그리고 새로운 문화
이제 이태원은 더 이상 외국인들만의 아지트가 아니다. 외국인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문화특구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 ‘이태원 프리덤’에서 보여지는 이태원에서의 자유,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이 말하는 이태원의 가치는 어느 지역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젊음과 자유분방함, 곧 이태원이 가진 삶의 에너지이다.
그래서 지금 이태원은 새로운 문화 명소이다. 낮에는 특이한 옷과 다양한 외국 음식, 브런치를 찾아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금요일 밤과 주말에는 클럽문화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이태원의 세계음식거리는 세계 각국의 조리사가 자기 나라 고유의 맛을 입맛에 맞게 요리해내어 국내외 많은 관광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곳에서는 여러 가지 입맛에 맞는 맛있는 먹거리를 체험해보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 또한 경험할 수 있다. 이태원 패션거리에서는 빅사이즈 옷집과 신진 디자이너의 의상, 저렴하고 질좋은 가죽 제품까지 독특하고 실용적인 패션 아이템을 만나볼 수 있다. 이태원역에서 보광동 방면으로 내려가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가구점들이 즐비하다. 미군들과 대사관 직원 가족들이 한국을 떠나며 내놓은 고가구들이 하나둘 모여 앤틱 가구 전문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제 2의 가로수길로 불리는 꼼데가르송 빌딩~한강진역 방향 길에는 미술관과 함께 세련된 창과 내부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들이 줄지어있다.

이태원의 거리는 어느 한 곳도 소홀할 수 없다. 한 곳도 허투루 보아서는 안된다. 방문할때마다 거리 곳곳에는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고, 눈길이 머무는 거리 풍경 하나하나가 나만의 명소가 된다. 이태원은 지금도 끊임없이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태원 거리에 가득한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뿐만 아니라 이태원의 문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지금의 이태원을 만들어가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이태원을 좋아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멋과 낭만을 사랑한다. 지금의 이태원을 만들어가는 젊음과 열정을 존경한다. 그것은 바로 이 곳 용산구 이태원이기에 가능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1년 5월 19일자 내일신문 기고

10
감사의 글
2011-07-27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날수 있는 것은
따뜻한 햇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 곁에는 그런 햇볕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시리고 아픈 마음을 따스하게 비춰줄
한결같은 사람, 저 성장현이 그러한
햇볕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용산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햇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용산구민 여러분
일 잘하는 구청장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위대한 용산시대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성장현 올림

9
인자부터 시작이여
2011-07-27

애비야!

월매나 고상이 많었냐?

넘다 상심허지 말그라 그러고 인자부터 시작이여.

니만 건강허면 된다. 알것제 잉-

벼슬(?)에서 물러났다고 선영에 고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향집에 들어서자 맨발로 마당에까지 나와 못난 자식을 힘껏 끌어 안아주시면서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뜨거운 것이 목에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키면서 엎드려 큰절로 불효를 사죄했다.

살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는 아버님의 위로의 말씀보다 30만 용산구민들의 하해와 같은 은혜와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고향에 돌아와 아버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한없이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당선이 되고 나서부터 선거소송에 휘말려 있음을 아시고 그전보다 더욱더 지극 정성으로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령님께 자식재판이 잘되게 해달라고 손금이 닳도록 빌어주시던 부모님이셨는데..........

비는데는 무쇠도 녹는다며 절에 가서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것지도 못할 만큼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던 부모님 앞에 못난 자식은 맥없이(? 벼슬을 빼앗기고 왔는데도 찢어질 것만 같은 당신들의 감정을 억누르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끌어안아 용기와 격려를 주시는 부모님의 뜨거운 자식사랑 앞에 또 한번 소리 없는 통곡을 한다.

하루세끼 끼니조차도 제대로 해결 못할 만큼 가난을 대물림해 받은 농사꾼으로 태어나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일제시대, 8.15해방, 여순반란사건, 6.25동족상쟁 등을 거치면서 80평생을 그저 콩 심어야 콩이 나고 팥 심어야 팥이 나는 줄 아는 순박한 마음으로 그 골짜기에서 태어나 지금껏 땅을 파고 살고 계신다.

젊었을 때는 얼마나 술을 좋아하셨는지 큰댁의 당숙님 그리고 숙부님과 세사람이 함께 술시동이 걸리면 인근에 있는 세 군데 주막술을 모두 마셔버렸던 두주불사의 애주가이셨건만 내가 중학교 입학하는 날부터 그 좋아하시던 술마저 끊어버리고 주막집 근처조차도 가지 않으셨고 어려운 살림에 7남매를 키우기 위해 관광은 커녕 엎드리면 코 닿을 수 있는 여수 오동도 한번 구경가지 않으셨던 지독히도 자식들 사랑에 남다른 분들이다.

그렇게 자식 키워도 다 소용없다고, 국회의원 될 줄 아느냐고 옆에서 핀잔을 주어도"자식들 덕보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답답한 세상 살지 말라고 그런다"며 배옷입고 고무신 신고 일평생을 그렇게 사시면서 아들 넷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신 분들이다.

못난 아들이 서울 용산에서 최연소로 구의원에 당선돼 고향을 찾았을 때 우리부부의 큰절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당선증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시더니 "애비야 이제 너는 내아들이기 이전에 용산 사람들의 아들이 되었으니 내말 명심해 듣거라. 옛날 돈 엽전은 말이여. 구녕(멍)이 뚫려 있어 갖고, 이 구녕으로 보면 잘난 사람도 보이고 못난 사람도 보이고 가난헌 사람도 보이고 잘사는 사람도 보인디말이여 지금 돈은 동전이고 지전이고 돈에 구녕이 없어 갖고 아무리 디려다 봐도 돈뿐이 안보인당께 그래서 지 성제간에도 재판을 허고, 애편네가 보험금인가 뭔가 타낸다고 제 사내를 죽이고 친구덜 간에도 사기도 치고 그러는거여. 그러고 말이다 어쩌다가 니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도 말이다 돌아댕기다가 다리가 아픈께 쉬어갈라고 니 주머니에 들어오는 거시여. 돈에는 귀신이 붙어 있당께 절대로 돋 욕심 갖지 말아."라고 공직자로서의 바른길을 신신당부하시던 아버님이셨다.

두 번의 구의원 임기를 마치고, 당신의 아들이 돈 한푼 없이 농협에서 3천만원 대출을 받고 아내가 겟돈 찾은 것 2천만원을 보태어 구청장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고 애써 농사지은 쌀이며 참깨며 콩을 팔아 이거라도 선거비에 보태라고 밤새워 밤열차 타고 서울에 올라와 며느리 손에 쥐어주고 돈 작게 준 것이 무슨 큰 죄나 된 것처럼 어쩔줄을 몰라하시던 부모님.

합동유세장 한쪽에 앉아 아들의 유세를 끝까지 들으시고 서울에 남아있으면 선거에 도움이 못되고 짐만 된다며 또다시 서둘러 밤기차를 타셨던 우리 부모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시골 촌놈이 서울 한복판 구청장에 그것도 최연소로 당선됏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너무 좋아하면 마가 낀다고 크게 소리내어 기뻐해 보지도 못하신 부모님께 못난 자식은 임기도 못 채우고 2년만에 물러나는 불효를 하고야 말았다.

"나는 말이여 아무런 욕심도 없다. 호강하고 싶은 욕심도, 논밭 많이 가질 욕심도, 그런디 꼭 한가지 소원은 말이여, 나가 중시조 소리는 한번 들어야 것는디. 느그덜 덕분에 말이여. 나는 그 욕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어렸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아버지의 이 말씀이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만 같다.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길임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명심해 본다.




※ 못난 자식의 재기를 그토록 갈망하셨던 아버님이 작년(2009년) 11월 23일 배가 아프시다고 병원에(서울삼성병원) 검사 받으시려 가셨다가 만 하룻만에 유언 한마디 없이 84세를 일기로 그 먼길을 그렇게 가셨습니다.
삼가아버님 영전에 생전의 불효를 빌고 또 빌어봅니다.



PS.(약력)

필자 성장현은 1955년 5월 18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대치리 도룡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매산 중.고등학교, 안양대학교 행정학과,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거쳐 단국대학교 행정학박사취득하였다.

97년 6월 4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국기초의원 출신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것도 서울구청장 중 최연소로 당선되었다. 선거가 있기 한달 전 다니던 교회목사님, 장로님, 집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식사대금 44만원을 낸 것이 선거법위반이 되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2000년 4월 25일 용산구청장직에서 물러났다.

2000년 5월.....

8
아내여! 아직 절망은 아니지 않소!
2011-07-27

여보!

아무래도 내 손으로는 못 떼겠어. 당신이 이 뺏지를 떼어줘.

약간은 물기 밴 목소리로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간신히 여기까지 말한 나를 빤히 올려다 보던 아내가 양복 왼쪽 깃에 천근무게로 달려있던 구청장 뺏지를 떼어 두 손으로 꼭 감싸 가슴에 대고,"여보,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해놓고 기어이 주루룩 눈물을 흘리고 만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10년(구의원8년 청장2년) 동안 열심히 했으니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자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달래던 아내가 막상 결과를 보고 나서는 더 힘들어하고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것을 지켜보면서 못난 지아비로서의 한없는 죄책감에 빠져든다.

지금부터 2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외종사촌 여동생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와 나는 흔히 말하는 펜팔을 통해 7년간이나 사귀다 결혼한, 그래서 중매 반 연애 반의 펜팔 커플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어느 화창한 봄날 그날도 학교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사환아가씨가 학교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줬다.

벤치에 앉아 읽어보니 왠 이름 모를 소녀에게서 온 편지인데 자기는 섬마을 출신이고 6남매 맏이로 태어나 위로는 오빠도 언니도 없는데 오빠가 돼줄 수 없느냐, 오빠가 돼줬음 좋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참 이성에 호기심 많은 나이였지만 그때만 해도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도 있었던 때라 별 부담없이 오빠가 되어주기로 하고 이런저런 사연과 서로의 이야기들을 담아 우편배달부를 무던히도 고생시키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진학도 포기 한 채 곧바로 광주 훈련소로 입대를 했다. 말로만 들었던 한 많은 눈물고개, 눈이 내려 얼어붙은 황토 뻘 밭을 높은 포복 낮은 포복에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굴러, 우로굴러를 원 없이 해야 했다.

하루 훈련이 끝나고 나면 군복이 이순신장군 갑옷이 되던 시절, 강도 높은 훈련에 그것도 모자라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던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2사단으로 배속됐다.

사단수색대원이 되기 위한 후반기 교육은 차라리 모든 것을 체념하게 했다. 꿈 많던 학창시절의 추억도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나눴던 섬 아가씨 김성희도 그리고 하루도 떨어져서는 못살 것 같았던 친구도 가족도 기억에서 아득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탈영을 계획했다 포기하기를 수십번. 그러는 사이 전후반기 훈련을 모두 마치고 신병훈련소를 퇴소하던 날은 전 훈련병을 대표해 사단장에게 퇴소식신고를 하는 영광도 맛봤다.

사단수색대 일명 육군 스키부대로 전출을 받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한 군이이 되었을 즈음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지금의 아내가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주소는 생각나지 않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아내 고향의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다.

펜팔로 사귄 아주 순수한(?) 오빠되는 사람으로 서울주소를 알고 싶다는 내 편지에 오늘의 이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아내에게 연결이 되게 해줬다. 그래서 끊어졌던 편지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찬이슬을 함뿍 머금고 신작로 가에 지천으로 서있는 가을의 여왕 들국화의 자태, 그리고 깊어가는 최전방의 가을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거라는 내 유혹에 아내는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말로만 듣던 강원도 양구행 버스를 탔단다. 춘천을 지나고 오옴리 고개를 넘어 포장도 되지 않은 굽이굽이 강원도 산비탈 신작로길, 거기다가 한눈을 팔면 금방이라도 소양강속으로 빨려 들것만 같은 산길을 돌아오면서 얼마나 손발에 힘을 주고 긴장을 했던지 선물로 사온 책표지가 땀에 젖어 보기 흉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3년 군대생활동안 상병 고참이 될 때까지 처음으로 면회를 와준 아내의 애틋하고 고마운 정이 진한 사랑으로 싹을 틔우고 아내가 스물세살이 되던 해 연애 7년만에 호칭이 오빠에서 기어이 여보로 바뀌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에게 물었다. 앞으로 정치를 하고 싶은데 정치인의 아내는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데 그래도 따라서 함께 살겠느냐고 말이다.

그때 아내는 미리 준비나 했다는 듯이 서슴없이 정치 참 재미 있겠네요. 그리고 어차피 당신 아내가 되기로 한 이상 각오가 되었으니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겠다던 아내가 결혼해서 어려운 단칸 셋방에서 아들 둘 낳아주고 시부모님 모시고 여섯명 시동생들 틈바구니에서 대소사, 가정일은 물론 내집 장만해서 구의원에 두번 당선되고 전국에서 최초로 기초의원에서 구청장으로 화려하게 당선이 되도록 내선거만 세 번을 치루고 중간 중간에 있었던 총선대선을 거쳐오면서 많이도 힘들었을 텐데도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구청장직에서 낙마한 나를 붙잡고, 여보! 당신 젊잖아요. 그리고 10년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으니까 좀더 충전해서 다음에 멋지게 컴백하면 되니까 절대 마음 상하지 말라던 참으로 강한 여자 인줄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내가 구청장 뺏지를 떼어들고 울고있는 모습을 찢어지는 마음으로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못 나디 못난 지아비의초라한 모습이란.....

사랑하는 아내여!

아직 절망은 아니지 않소!
비록 지금은 당신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했지만 남은 여생동안은
더욱 바르고 신중하게 살아 환하게 웃으며 살아갈 날만을 기약하리다.

2000년 5월

7
아! 김대중대통령님.
2011-07-27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저 역시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저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더라도 타협을 거부 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 中 -



71년 7대 대통령 선거 때입니다. 40대 기수로 박정희 대통령에 맞선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제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야 말았습니다. 순천농업전문대학(현 순천대학) 대운동장에서 개최된 대통령후보 선거연설에서 김수한 대변인, 유진산 당수에 이어 연단에 오른 김대중 후보의 사자후는, 열여섯 꿈 많은 소년을 평생 정치외길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87년 평민당후보로 대권에 도전하셨을 때는 경남진주, 마산 유세를 맡아 혼신의 정열을 불태웠지만 다시 한 번 분루를 삼켜야 했습니다.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용산구 회장을 맡아 전국 연청동지들과 사력을 다한 92년 선거에서마저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시던 날, 지구당 당사에서 집에까지 걸어오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몇날며칠을 자리보전을 해야 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인동초도 결코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신 선생님의 불사조 인생도 더 이상 훈장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영국 유학을 마치시고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결성할 때는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97년 대선 때는 용산 유세위원장으로 젖 먹던 힘까지 보탰습니다. 결국 준비된 대통령후보 김대중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셨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쁨에 들떠 있을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재수 없는 여인은 하필이면 시집가는 날 등창이 난다더니, 남들은 한번 만에 쉽게도 되던 대통령을 그처럼 어렵게 당선이 됐는데 눈앞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사실상의 국가부도를 탁월한 지도력으로 최단기간에 극복해 냈습니다. IT육성과 과학기술혁신으로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을 정보화 강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대통령께서는 문화산업을 통제나 억제가 아닌, 육성으로 한류 열풍을 활짝 꽃피우게 하셨습니다.

2000년 6월. 분단 35년 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햇볕정책은 얼어붙은 남북관계 개선을 넘어 세계평화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세상은 노벨평화상으로 화답했고, 대통령께서는 5천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의 국격을 드높여 주셨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 맞선 유신반대운동과 투옥, 가택연금, 망명으로 이어지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73년 일본 동경에서 납치돼 현해탄 앞바다에서 수장 될 뻔했던 목숨을 간신히 건져, 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때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배후로 지목돼 사형언도를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 땅에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 내셨으며, 90년에는 목숨을 건 13일간의 단식으로 지방자치제 실시와 내각제 포기를 관철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여야간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고 정권을 재창출한대한민국 최고의 민주화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뒤돌아보면 선생님의 고달프고 험난한 한생애가 고스란히 한국의 현대사였습니다.

그런 대통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온 38년 제 정치 인생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벅차도록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금년 정월 초하룻날(2009년) 세배를 갔을 때 “대통령님 올해는 더욱 강건하십시오”라는 제 인사말에 두 손을 잡아주시며 “잘 되길 바래요”하고 환하게 미소 지어 주셨는데... 그것이 가까이서 드린 마지막 세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님 손을 붙들고 통곡하시던 대통령님을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홀연히 그렇게 보내 드렸습니다.



서거하시고 용산역 광장에다 빈소를 마들어 놓고 국장기간 내내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영정사진 앞에서 “선생님! 선생님!”을 애타게 부르며 눈물로 조상하던 젊은 청년에서부터, 무더운 여름임에도 하얀 모시한복에 버선까지 갖추어 신고 정성을 다해 문상을 한 나이 지긋한 어른에 이르기까지 조문객이 줄을 이었습니다. 어린자녀들을 대동한 가족들, 제복을 입은 군인, 소방대원, 경찰, 유치원생, 초·중등학생, 벽안의 관광객도 발길을 돌려 분향하고 헌화를 했습니다. 조가로 사용했던 목포의 눈물이 구슬프게 용산역 광장에 울려 퍼질 때면 길을 오가던 행인들조차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땡볕이 뜨겁게 내리 쬐이던 그날, 대통령님이 취임선서를 했던 국회의사당 앞 그 자리에서 이승에서 우리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기위한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먼 길을 한 번도 뒤돌아보시지 않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평생 사모했던 선생님을 보내드린 충격과 심신의 피로가 겹쳐 약을 먹어가며 이틀 동안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국상을 함께 치른 동지들과 지인들에게 일일이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씁니다.



선생님! 기억하겠습니다.



80년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언도 받고도 다시 살아온 선생님은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나는 살아있는데 당신들은 차가운 땅 속에 묻혀있구나”라며 온 몸을 들썩이시며 통곡했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편이라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씀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지도자는 항상 국민들보다 반발 앞서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국민과 함께 간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즐겨쓰시던 “경천애인”도, “민주회복 조국통일”도 기억하겠습니다.



민주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셨던 세계적인 지도자 김대중 선생님.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무거운 그 짐 내려 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소서.







2009. 8. 26.

성장현 드림

6
아아 고건총리님!
2011-07-27

아아 고건총리님!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한 것도 없는데 많이도 혼란 스럽고 착잡한 심정을 달래가면서 출근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지구당 수석부위원장이 전화를 걸어 숨 넘어가는 소리로 고건 전총리가 대권을 포기할 것 같다는




자막뉴스가 YTN에서 계속 나오고 있고 오후 1시 30분경 직접기자회견도 한다는데 뭐가 이렇게 되는일이 없느냐며 낙담한 심정을 담아 볼멘 소리로 불평을 늘어 놓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허탈 하고 몸을 가누지 못 할만큼 충격이 크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리고 또다시 끝 없는 나락인가?




믿는 사람들은 시련이 닥쳐오고 질곡의 터널이 길면 길수록 크게 쓰기 위한 연단이라고 잘도 위안들을 삼더니만…




이천년 5월부터 시작된 낭인(?)생활이 2007년 대선을 통해 종지부를 찍고 두 번째의 정치 마당을 활짝 열어 갈 것이다라는 기대로 나이 먹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준비하고 기다려 왔는데…




공자가 나이 사십이면 불혹이라고 했다던가?




불혹을 갓 넘긴 시절에 만나 인연을 맺은 고건 서울시장은 제 3공화국에서 출발해 노무현 참여정부에 이르기 까지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온 행정은 물론 관직에 관한한 자타가 인정하는 달인이였고


행운아였기에 모든 공직자들의 표상으로 동경과 함께 때로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비록 미관말직일지라도 나라 일을 논하는 자리에 앉아 보고야 말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이 헛되지 않아 비록 국사는 아니 였지만 30만 용산구민의 수장으로




천백만 수도서울을 책임지고 있는 고건시장과 시정을 함께 의논하면서 대인다운 풍모와 산보다도 더 신중한 처신에 꼭 닮아 보고싶은 거목으로 흠모해왔던 참으로 존경하는 분을 모시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의 길을 부지런히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은 많이도 행복했고 꿈에 부풀었는데…




“탄핵정국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끝으로 국가에 대한 봉사의 길을 마감하려 했는데과분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일년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 왔지만 대결적 정치구도 앞에서 역량이 부족함을 통감하고 깊은 고뇌 끝에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라는 성명발표가 뚫어져 텅빈가슴을 깊숙히 후벼판다.






전장에 출전한 장수가 전쟁을 하다 말고 막사에 들어 앉아 장고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마음 한 켠으로부터 엄습해왔던 불안한 생각이 막상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실망과 좌절감이란…




더욱이나 주변에서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타개해본적이 없어 위기관리에 문제가 있고 따라서 지금은 그렇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참새때들의 입방아를 그 무슨 말 같지 않는 소리냐고 큰소리로 윽박지르고 떠들던




어제들의 행동이 스멀스멀 일어나 성난 군중처럼 달려드는 환영 앞에 한없이 초라해 진다.




2005년 상반기부터 여타의 모든 후보들을 따돌리고
지지도 수위를 달릴 때 부터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전투병이 필요하다 선거에 전투요원은 당원이라며
창당을 틈틈이 건의 드렸는데…




5.31 지방선거 때만해도 그랬다 지지도 1위라는 이미지 관리도 매우 중요하지만 선거에 개입을 해주셔야 신세진 후보들이 당락을 떠나 훗날 물불 가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전위대가 될 것이라고 말씀 드렸지만




특정정당이나 특정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선거에 개입 할 수 없다며
특유의 신중한 처신으로 중용의 “도”를 취하셨다




대권을 염두에 둔 입장에서는 정당판의 진흙탕 싸움에 그것도 지방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직접 뛰어들 수 없었고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지사였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후보들 심정에서야
어디 그래겠는가?




물론 이런 사소한 일들이 지지도 하락으로 연결되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잔뜩 기대를 했던 후보들이나 도움을 요청했던 정당의 당원들은 상당히 실망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각설하고




대권주자가 어느 특정 지역이나 세력만을 대변할 수 는 없겠지만 호남의 대표주자였던 고건 후보가 대권을 포기한 지금의 호남 유권자들의 심리상태는 “공황”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력한 한나라당 후보에맞서 정면 승부를 펼칠 범여권 후보의 대안부재가 상당기간 정치판을 복잡하게 달굴 것 같다




결국은 수많은 이합집산을 통해 새로운 임기 5년 국정을 책임질 대한민국 통수권자는 어김없이 12월 18일 날 선출될 것이다.




대권포기를 번의 하라는 지지자들의 계속되는 요구가
관철 되었음 참 좋겠다는 마음을 보태 총리님의 앞날에 더 큰 영광이 함께하길
아픈 가슴으로 간절히 소망해본다.

5
감사하신 성장현 동지에게
2011-07-27

감사하신 성장현 동지에게

1월 13일 새벽세시에 쓰신 편지 오래전에 받았읍니다. 이제사 회신 해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동안도 안녕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동지께서 벌써 아이들을 다 키워 놓고 네번째 맞는 양의 띄를 맞이 하시는 연세에 그 끈질긴 학구열로 박사학위를 위해 뛰어 드신다니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꾸준한 연구로 한국에 더 유리한 SOFA법을 개발 하셔서 미국도 그 법을 인정할수 있도록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선생님을 용산으로 불러 살게 하신 뜻인지도 모르겠읍니다.

저와 저의 모든 가족은 다 잘 있으며 저의 띄가 양띄이기 때문에 금년 봄에 환갑을 맞습니다. 그러나 홀로 생일을 맞아야 할 형편이고 우리 막내가 금년에 박사학위의 마지막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막내는 결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이곳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무슨 뜻이 있으신지 모르겠읍니다.

그리고 노무현 당선자를 위해 책임지고 당선시킨 보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1년반 있으면 출감합니다. 그러나 그 후 3년간의 보호감찰기간이 있기 때문에 여행의 자유가 없어 자유로히 여행을 할 수 없으나 이것도 법원에 상고하여 이 보호감찰 시기를 재심해달라고 하려고 합니다. 허가가 나올지는 몰라도 물어는 봐야지요.

이제 다음달 부터 강단에 서실 성 선생님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이끄심에 의해 좋은 학과목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학부 학생들도 한국 문교부의 희생양들인데 그들이 남북이 통일 된 후에도 북한 출신의 동기들에게 사상적으로나 학식으로 지지않고 우리대한민국의 전통을 전수해야 되는데 이들에게 성선생님의 애국심으로 경각심을 주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남한에서의 조기유학때문에 배웠어야 할 국어나 국사지식이 걱정되며 장시간의 학교, 학원, 해외여행때문에 조국을 이해해야할 시간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와 떨어져 있던 관계로 성인으로서 구사할 언어도 배울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걱정됩니다. 그들이 커서 남북통일 후 북한에서 일인숭배, 무신론, 공산주의를 배운 사람들과 대치될때 어떻게 될까도 걱정입니다.

온세계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고 일인독재국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잇고 중국과 소련도 속내는 자본주의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폐쇠된 이북에서 교육맏은 학생들은 이러한 세계 추이를 이해하기 힘들것입니다.

성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저의 혼을 심어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는 혼이랄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다만 저가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양심과 겸손, 그리고 정직을 가지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보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면 장래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될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성선생님에게 교육받은 학생들 만이라도 겸손하고, 양심적이고, 정직하고, 존중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도 변할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노무

현 당선자가 바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것이며 빈부의 차이도 좁아 질것이고 중산층이 많이 생겨날것입니다.

저가 한국에 나가게 되면 불우한 청소년소녀들을 사관학교같은데로 모집해서 모든 의식주와 학비를 무료로 해서 교육을 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문교 정책을 쇄신해서 조기유학과 과외공부를 제한해서 한국의 공교육을 개선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을 양성하는데 예산을 쓰도록 조언하려고 합니다.

최근들어서 많은 가정은 엉망입니다. 가정이 국가를 이루는 한 세포일진데 가정에서 아버지는 저녁마다 술로 시간을, 어머니는 자식데리고 조기유학을 떠나버리니 술을 수입하는 외화와 효과의 검증도 받지 못한 조기유학에 아까운 돈을 낭비하고 있으니 기가막힙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주 5일 근무 문화가 생기기 때문에 가장은 가정을 위해 헌신할수있는 시대가 오고 있읍니다. 아버지는 자식들과 함께 딩굴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살면 자식들도 커서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그렇게 할것입니다. 부자가 함께 경기를 참관한다던지 낚씨를 함께 간다던지, 등산 또는 관광을 함께 하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술을 사야하는 돈으로 얼마든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살수있읍니다.

자식은 아버지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식은 사회생활하는데 쓰는 하나의 도구이지만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학을 하려면 고등학교는 마친 후에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미국에 와서 탈선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돈만 보냅니다. 이아이들의 장래는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결국 손해 보는 쪽은 그 자신들과 부모가 이니겠읍니까. 그리고 나아가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돈을 소모할 돈도 없지만 시간도 없읍니다.

한국은 결코 돈이 많은 선진국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선진국에 사는 양 돈을 낭비하며 후진국에서온 사람들을 무시하고 부리는데 이것도 고쳐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3D(dirty, difficult, dangerous)일도 하면서 그 일자체로 이해하고 일을 향상시키는데 모든 혼을 다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야 발명도 나오고 외화지출도 최소화 시킬 수 있읍니다.

한국의 수출품들을 보세요. 많은 생산품을 외국의 로얄티를 주고 만드는 것 아닙니까. 왜 한국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려고 합니까. 쉽게 번돈은 또 쉽게 없어집니다.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노력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반성해야 합니다. 왜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가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윤을 생각해주고 주주들의 투자도 생각해 줘야지 기업의 이윤을 노동자와 똑같이 또는 더 많이 갖겠다는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회사의 기물을 부수고 일하는 사람들을 잡아 끌어 내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노동문화 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결사반대'운동은 세계TV에 비쳐져서 외국투자가 줄어들게 되면 한국의 경제를 죽이는 결과가 될것입니다. 기업이 잘 되어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사간에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줄 아는 아량을 갖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양심을 팔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pressian.com에 "우리, 로버트김을 잊었는가"라는 기사가 있답니다. 학생들에게 읽도록 추천해 주시면 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이 기사를 올린 신기섭 시인은 영문학박사이며 경제학박사인데 저하고 많은 편지 왕래가 있었던 분입니다.

두서없이 쓴 편지를 용서하시옵고 성선생님과 가족 그리고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옴이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로버트김(김채곤)드림
2003년 2월 5일

4
로버트 김에게 보내는 글
2011-07-27

로버트 김에게 보내는 글

존경하는 애국지사님!

교교하게 흐르는 달빛이 영하의 겨울 밤을 더욱 얼어 붙게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네번째 맞이하는 양의 해인 계미년은 저에게 있어 참으로 의미있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는 3월부터는 단국대학교에서 학부생들을 상대로 지방자치 이론과 실무를 강의하게 됩니다.

소파개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자 하는 해이며 사면복권을 받아 새롭게 정치일선에 나서고자 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가정적으로는 큰아이가 제대를 하고 둘째 아이가 입대를 하게 되며 400여년을 뿌리내려 살아온 고향(순천시 황전면) 집을 헐고 작은 우거를 짓기로 계획한 해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이곳 고국에는 음력으로는 아직 섣달이라 그런지 날씨가 매우 찹니다.

그곳 미국은 어떠신지 그리고 그 동안 건강은 여전하신지 많이도 궁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별로 해놓은 것도 없이 띠의 해를 맞이해 뒤돌아보니 참으로 멀리도 와버린 것 같습니다.

하늘이 분명 사람을 낼때는 부여한 임무가 있을텐데 더욱이나 저의 중시조되는 삼(자)문 할아버지께서 단종을 복위하시려다 용산구 이촌동 새남터에서 불귀의 객이 되신지 수 백년이 지난지금 부족한 이 후손을 용산으로 불러 살게 했을 때는 무언가 뜻한바가 계실 것인데 아직도 미련한 저는 제가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도 바르게 깨닫지 못한 채 정치법(선거법)에 묶여 세월을 축 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온국민을 하나되게 했던 월드컵대회와 남북한선수들이 함께 뛰고 뒹굴었던 아시안게임, 지방자치선거와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지난해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2월 대통령선거 때는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 종로, 중구, 용산 선거책임을 맡아 동지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선생님!

북한 핵 문제로 한국언론이 정신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정작 무관심한데 언론들만 살판(?)났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면서 협상은 없다고하고 한국은 북한과 미국간에 중재는 아니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알아듣지도 못 할 이야기들을 계속해대고 있습니다.

서방이나,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체제) 인정하고 UN 동시가입때 했던 약속대로 북한에 원조를 해주는 일괄타결이면 될 것을 가지고 힘의 논리를 내세워 억지를 부리는 미국이나 비위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극우보수주의자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떤 나라나 민족만 핵을 가질 수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막상 강단에 설려고 하니 걱정이 됩니다.

조국의 내일을 책임질 동량들인데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며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말입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강의 중에 선생님의 혼을 심어 주고 싶습니다.

참고로 꼭 제가 빼놓지 않고 해야 될 말을 선생님 저에게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학생들에게 불의와 타협하거나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먹을것 때문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려 합니다.

선생님!

지금은 새벽 세시입니다.

서쪽으로 기울던 달빛마저도 졸고있습니다.

사명과 책임을 다한 저 달이 오늘 밤 더욱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웃과 사회 그리고 나라위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또 뵈올 때 까지 건강하십시오.

2003년 1월 13일 새벽세시에

서울에서 성장현 드림

3
모두가 돈 때문이다
2011-07-27

모두가 돈 때문이다.

전경련이 법에 의하지 않는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식선언을 했다.

보도에 의하면 회원사 대표 261명 전원이 기립박수로 지지를 했고 각 정당 도 전경련의 결정에 전폭적으로 찬동한다고 앞다투어 발표를 했으며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이런 전경련의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동조를 했다.

한 걸음 더나가 경제 5단체장들은 올12월에 치루워질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하겠으며 반 시장주의적 선심공약을 내놓는 후보에게는 재계가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평가자료를 개별기업에게 전달하겠으며 앞으로는 개별기업이 특정 선호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겠단다 한마디로 말해 재계 입맛에 맞는 후보에게 그것도 골라서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할 것이며 재계 이익에 반하는 후보는 낙선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경천동지 할 일이다.

당연히 하지 말았어야 할 불법행위를 정경유착이라는 묘한(?)단어로 포장에 천문학적인 음성정치자금을 그것도 경쟁회사에 뒤질세라 원도 한도 없이 알아서(?) 갖다 받쳤던 기업들이 시대가 변했다고 무슨 독립선언서라도 낭독하듯 자못 엄숙하게 선포를 했다. 돈과 권력은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인데도 돈을 가진자는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움켜 쥔자는 때는 이때다 싶어 단단히 한목 챙기려고 사생결단을 하고 덤벼들었기에 건국이래 부정부패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법이 일취월장했고 그날그날 먹을 것을 걱정해야하는 소시민들조차도 몇억 정도 터지는 것 가지고는 이웃집 강아지 짖는 것만큼이나 우습게 여길 만큼 간덩이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나라가 절단이 나서 IMF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우리 손으로 꾹꾹 눌러서 써야만했다.

은행돈을 기업들이 제 주머니 돈 꺼내 쓰듯 마음대로 가져다가 해외로 빼돌리고 정치인들 뒷돈 대주고 발목 잡기 하느라 결국은 은행조차도 부도가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밭긴다더니 국민들의 피땀어린 혈세로 공적자금이란 산소마스크까지 써야했던 서럽고 부끄러운 과거를 어쩔 수 없이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었다.

어린아이들 돌 반지에서 코흘리개 돼지저금통까지 몽땅 털고 또 털어야했던 온 국민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으로 간신히 외환위기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죄 없는 국민에게 고통을 준 과거에 대한 재계의 고해성사를 선언에 앞서 먼저 듣고 싶었음은 순진한 나에 욕심이었을까?

한줌도 안 되는 사람들의 탐욕의 대가로 4천7백만 전 국민이 몽땅 피해를 입어야 했던 값진 교훈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음성적인 정치자금, 다시말해 검은 뭉칫돈을 쥔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서로 짜고 빼먹는 일이 앞으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재계의 선언이 선언적의미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경제가 이만큼이라도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자유경쟁, 시장경제체제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시장경제수호에 재계가 앞장서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한다.

정치자금은 기업하는 사람들이든 조합원이든 회사나 조합 돈이 아니라 각자가 개인재산으로 기부해야 하고 반대급부를 어떠한 경우라도 바래서는 안될 것이다.

부정한 돈 때문에 역대 정권이 비극으로 마감됐고 이런 비극을 겪고도 지금 이 시간까지 온갖 부정부패의 게이트로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다 돈 때문이다.

2
대통령 억지로 하기
2011-07-27

대통령 억지로 하기

남한만한 면적밖에 안되고 인구도 27만 2천여명(97년)에 불과한 작은나라 아이슬란드는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를 가진 나라이고 세계최초로 여성대통령을 탄생 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성 국회의원이 의석의 절반이상을 차지한 세계최초의 국가이며, 세계최초로 전 국민의 유전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그것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민간기업에 허용했고 거기에다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고 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79 세로 일본(80세)에 이어 캐나다와 함께 공동 2위 이긴 하지만 그러나평균슈명에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만족도를 곱한 행복지수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1위라고 한다.

국제 경쟁력은 10위(스위스 국제 경영개발원 2000년 세계경쟁력 연감)구매력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생활수준은 OECD회원국중 6위, 1인당 국내 총 생산은 24,860달러로 이부분 또한 세계 최상위권이고 미혼부모 출산율도 세계1위(67%)로 어떤 항목을 포함하던 이만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나라답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수 없는 재미있고 중요한 기록을 추가 한다면 현직 대통령이 경쟁자가 없어서 할수 없이 대통령을 4년간 더하게 되었다는 세계 초유의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권한은 별로 없는것 같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행정업무에 책임을 지지않고 각료들이 책임을 진다. 그렇다고 엄밀히 말해 내각책임제는 아니지만 한나라 대통령을 서로 하지않겠다고 후임지가 나서지 않아 억지로 대통령이 4년을 더해야 했던 일련의 사건은 모르긴 몰라도 전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 만은 분명하다.

바야흐로 대권의 계절이다.

능력과 자질이야 있건 없건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지지를 하건 말건 막무가내로 대권을 노리는 그래서, 정치권용어로 통칭 대통령병 환자들이 자천타천으로 10여명이나 출마한다고 야단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통령 역사에 관한한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나라중 하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로 물러나 망명지 하와이에서 객사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장기 집권에 믿었던 부하에게 저격을 당했으며 최규하 전 대통령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다.

80년 5월 광주를 제물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하고 나서 백담사로, 감옥으로 차마 글로 쓸수 없을 만큼 오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많은 기대속에 출범한 최초의 문민대통령은 건강은 못 빌려도 머리는 빌릴수 있다더니 I,M,F에다 반토막난 나라마저 저당 잡히고 결국 부도까지 내고 말았다.

준비된 국민의정부 대통령 또한 부도난 나라 경제를 되살리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문제를 햇볕정책으로 풀어가는 등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각료들의 정책혼선과 측근들의 신중치 못한 처신, 그리고 두 아들 문제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그런데도 서로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적임자라고 나서는 용기와 애국심(?)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노무현, 정몽준 두후보의 극적인 단일화는 그리고 약속에 대한 책임은 신선한 충격을 주긴 하지만 지미카터처럼 재임때 보다 퇴임 후에 더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통령을 우리는 언제쯤 한번 볼수있을까?

아이슬란드처럼 서로 대통령을 하지 않으려고 양보는 못한다고 해도 야당에게 더 존경받는 그런 대통령, 퇴임 후에 화려한 집에서 살겠다고 재임 중에 새로 집을 짓지않고 살았던 집으로 그냥 돌아가는 그런 대통령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바램일까?

제 34대 용산구청장 성장현(2002년1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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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일관
2011-07-27

나의 통일관

남측 방문단 최고령자인 유두희 할머니가 1일 평양 고려호텔 개별 상봉장에서 북측이 마련하고제공한 백돌상 앞에서 아들 신동길씨와 함께 즐거워 하고 있는 모습은 밤새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반세기 동안 응어리진 이별의 한을 풀기에 2박 3일의 일정은 너무나 짧았다. 50년만에 혈육과 재회한 감동과 회한으로 마지막 밤을 뜬눈으로 지샌 남북 이산가족들이 12월 2일 불과 8시간여씩의 상봉을 끝으로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북받치는 설움을 쏟아냈다. 대한 민국 국민 누구라도 이러한 서러운 현실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어느덧 통일은 어제 닥칠지 모를 현실이 돼었다. DJ 정부의 뉴 밀레니엄의 가장 큰 성과라면 한발 더 다가선 남북의 화해무드가 아닌가 싶다.

어느덧 나의 삶도 40이라는 물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자문해본다.

나의 통일관(즉, 국가관)은 어쩌면 어릴적부터 품어왔던 이상인지도 모른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도 무섭게 우리는 제 3국의 힘에 의해 강제로 갈라설 수 밖에 없었다. 지난 만세기 동안 우리 부모세대의 처절한 아픔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가슴 아픈 민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단지 부러움으로 일관할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도록 노력하여 다음세대를 이어갈 후손들에게는 같은 아픔을 전해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국대학교에서 '북한학'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더욱더 통일의 염원을 키워갈 수 있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1996년 기민. 기사연합(CDU/CSU)과 사민당(SPD)연정이 실시하기 시작한 적극적인 동방정책(Ostpolitik)의 점진적인 영향에 따라서 나타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나, 냉전정책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체제경쟁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으며 서독의 동방정책 역시 동.서분쟁의 테두리 내에서 추구될 수밖에 없었음을 고려한다면 독일의 통일은 1980년말 나타난 소련과 동구권의 스스로의 모순에 의한 체제내적 붕괴로부터 결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은 비록 서독이 1960년대에 동방정책을 통하여 동독과의 교류를 시작하고 1972년 동. 서독의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UN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그 가능성과 통일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으나 1980년말 국제정치적인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 통일에 대한 세부적인 정책의 수립이 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의 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군사적인 국경선의 소멸 차원에 머물게 되었으며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각 분야에 있어서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아직까지 냉전에 의한 분단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통일에 대한 조속한 실현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이 한국 사회 내에서 풍미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체제 붕괴의 위협에 따른 심각한 고려에 의한 체제유지적 극단 정책을 추구하게 되는 경과를 낳게 외었다. 이에 따라서 한국 내에서의 통일정책은 체제경쟁적 관계에 있던 남.북관계가 이미 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한국의 자본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북한체제를 극복한 것 처럼 간주되었고 더 이상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남.북한의 체제경쟁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1990년내의 통일정책은 이제까지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속에서 통일방식에 대한 논의로부터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의 문제들의 해결 방안에 대한 접근으로 급속도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남.북한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전제로 해결의 방안과 가능성을 연구할 경우, 남. 북한의 경우는 분단 이전에 하나의 정치적 단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치직 단위가 합하여지는 통합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재통일'(Reunification;Wiedereinheit)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남.북한이 자율적으로 분단된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강조하고 냉전체제의 틀 속에서 남.북한관계를 설명할 경우, 한반도 문제는 통일이나 통합의 일반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재통일'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문제를 '재통일'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될 경우, 한국과 북한이 각각 추구하고 있는 통일정책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로 할 때에는 그 논리적 근거가 미흡함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통일문제를 고려할 경우, 통일정책은 단순히 정치적 통일을 위한 정책의 추구만이 통일정책의 전부가 아니라 통일 후 나타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그 후유증을 최소화 하면서 진정한 통합을 달성하는 통일과정과 그에 따르는 주변 조건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까지 한국의 통일정잭을 고찰해 보면 아직까지도 통일정책과 통합정책에 대한 구분이 불분명하고 정책의 내용 역시 혼용되어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통일 상황과 관련하여 통일 방법에 대한 논의를 몇가지로 요약하면 각각의 통일 상황과 결부하여 다음과 같은 통일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은 '독일식의 흡수통일'이다.

두번째 유형으로 '베트남식의 공산화'통일 유형을 들 수 있다.

세번째 유형은 남. 북한 양측이 협상과 협의에 의하여 하나의 헌법을 채택하여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유형으로 '예멘식의 통일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 유형은 '점진적 통합 유형'으로 남. 북한이 일정 기간 평화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존해 가는 가운데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여 각각의 체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점진적으로 통합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유형이다.

네가지 유형들의 각각이 취하는 장점이 있겠지만 가장합리적이고 한반도 실정을 고려한 통일방식을 취한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본다. 한 고을의 수장을 지내왔던 시간동안 용산이라는 지역환경속에서 나는 몇차례 미군의 영역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며 강하게 그들의 힘과 겨루워 왔다.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할 권리, 우리 스스로가 이루워 나가야 할 염원이 무엇인지를 잊지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로 오늘도 이 글을 적어본다. 외람되게도 이 글이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단행본의 요약은 아니지만, 작은 지면을 통해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통일관(국가관)을 잠시나마 피력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리며 이 글을 마치겠다.